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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9:10-17

2020년 누가복음 공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밀씀:누가복음 9:10-17

 

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누가복음 9장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1-9절 말씀을 통해서 열두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누가복음 9장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라고 했습니다. 전도 여행을 떠났던 열두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예수님께 보고했습니다. 곧 그들은 전도 여행 보고대회를 가졌습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흥분이 되어서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첫 전도 여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덧입고 나갔기 때문에 전도 여행 동안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자가 나음을 받는 그런 능력의 역사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들뜬 마음과 흥분된 상태에서 자신들이 행한 모든 일을 예수님께 보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세다라 하는 고을로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왜 그들만 따로 데리고 벳세다라는 마을로 갔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30-31절에 보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자들이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전도 여행 다녀온 제자들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 가서 좀 쉬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리가 이를 알고 따라옴으로 제자들이 조용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11절에 보면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벳세다는 가버나움에서 뱃길로 약 6.4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육지로 걸어서 오려면 약 16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32-33절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리들은 걸어서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벳세다로 가는 것을 알고 무리들은 걸어서 예수님 일행보다 먼저 그곳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조용한 시간을 갖고자 했지만 몰려온 무리들로 인해서 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따라온 무리들을 영접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온 큰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또한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4: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여든 큰 무리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해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 있는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자 열두 제자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곧 많은 무리들의 숙식이 걱정이 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기를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유하며 무엇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해는 지고 무리들은 많고 이곳은 빈들이라 먹을 것도 없고 숙소도 없으니 무리를 마을로 보내어 유하며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건의했습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들의 이런 제안이 진정 무리들이 걱정이 되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이들을 빨리 돌려보내고 자신들이 쉬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우리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자들의 제안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13a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마을로 보내어 유하며 먹을 것을 사먹게 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의 제안에 도리어 너희가 먹을 주라고 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지만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5-6절에 보면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 6:5-6).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제자들을 시험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자기들을 따라온 많은 무리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라왔던 많은 무리들도 그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기 위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제자들을 훈련하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13b절을 보면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고 했습니다.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37절을 보면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또한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7절에서는 빌립이 대답하기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했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성인 남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화폐로 환산하면 몰려온 무리들을 조금씩 먹게 하고자 해도 족히 일천 만원의 큰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수중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제자들의 형편을 볼 때 무리들을 먹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모든 사람을 먹이기 위해서는 먹을 것을 사오지 않고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고 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수가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14).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었다면 거기에 모인 사람의 수는 여자와 어린 이이들을 포함하면 족히 일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예수님께는 제자들에게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14절에 보면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리를 오십 명씩 앉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40절에서는 백명 씩 혹은 오십 명씩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리들을 오십 명씩 앉게 하였습니다(15). 16-17절을 보면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을 오십 명씩 무리지어 앉히자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무리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 이에 무리들이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것을 거두니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계시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이적을 행하실 때 오늘 본문의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5-6절에서 본 것처럼 제자들을 시험코자 하심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좇아 나온 많은 무리들의 상태는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34절에서 본 것처럼 목자 없는 양과 같았습니다. 이런 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하시는 이적을 통해서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어떤 믿음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를 깨달아 알게 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이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사건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곧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계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지극히 육적인 생각으로 판단하고 그 방법에 대해서 대답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먹고 사는 생명은 떡과 이것을 구할 수 있는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이적을 행하신 것은 이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 없는 빈 들에 있게 되었을 때에 그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믿고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면 “우리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니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배불리 먹여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푸신 오병이어 이적이 지닌 진정한 의미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35절에 보면 오병이어 이적을 보여 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이 떡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그렇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시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만을 섬기라’는데 있었습니다. 신명기 8:1-6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그들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40년 동안 한 벌의 옷으로 살게 하고 한 켤레의 신발로 지내게 한 것은 모두가 “너희는 다만 여호와만을 섬기라”는데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이제 그들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이곳 빈들에서 다시 한번 동일한 사건을 반복하여 행하심으로써 다시 알게 하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 믿음에 있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은 단순한 이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새 출애굽의 이야기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새 출애굽을 가져 오시는 분 곧 메시아시라는 표적입니다. 오병이어 표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표적으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 표적을 새 출애굽의 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이 표적은 빈들에서 발생했습니다(12). 빈들 곧 광야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 40년 동안 살아간 곳입니다. 그러므로 빈들은 출애굽을 연상시키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초자연적인 이적을 통해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게 된 것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산 것을 기억나게 합니다. 먼 빈들까지 따라온 큰 무리를 돌려보내지 않고 오십 명씩 앉게 하신 장면도 출애굽을 연상시킵니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백부장과 오십부장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8:25절을 보면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재덕이 겸전한 자를 빼서 그들로 백성의 두목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 부장을 삼으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출애굽 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오십 명씩 백 명씩 무리를 짓고 오십부장과 백부장의 관리를 세워서 그들의 지도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빈들 곧 광야를 배경으로 오십 명씩 오십 명씩 앉아서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는 이 모습은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은 후에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였다고 했습니다.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연상시키는 숫자입니다. 12라는 숫자는 열두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을 연상시키는 상징적인 숫자이므로 12를 언급할 때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광야에는 열두 지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망한 후에 유대인들은 열두 지파의 회복을 기대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대는 구약 성경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곳인 이사야 11:16절을 보면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 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 북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구약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기대한 새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회복을 포함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진 유대인들에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은 후에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였다는 것은 새 출애굽이 발생하고 있다는 표적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누가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의도적으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이적과 유사한 이적이 구약에도 기술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4:42-4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고 남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 이야기는 엘리사의 이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보면 이해 될 수 있습니다.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는 표적을 행한 엘리사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병이어로 최소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떡 1개로 최소한 1000명을 먹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떡 1개로 5명을 먹인 엘리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사 보다는 최소 200배 이상의 큰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엘리사 선지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이적은 단순한 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는 초자연적인 표적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이 이적 사건은 예수가 누구인지 묻는 헤롯의 질문에 이어서 등장하고(9:7-9),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ㅜ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9:18-27) 이전에 위치해서 메시아적 잔치를 베푸시는 존재인 메시아이심을 입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광야에서 행해진 이적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한 후 광야에서 만나를 먹인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둔 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위한 새 출애굽의 표적임을 암시 해 줍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 출애굽 당시 광에서처럼 그들은 새 출애굽의 놀라운 이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 새 출애굽을 이루시는 메시아이심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 출애굽의 역사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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