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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9:18-27

2020년 누가복음 공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말씀:누가복음 9:18-27

 

우리는 지난 시간에 벳새다의 빈들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둔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에게 신앙 고백을 받으시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을 비교해 보면 누가복음은 마가복음 6:45-8:26절의 내용을 다루지 않고 생략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6:30-44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 고백 사건은 8:27-38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에서는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곧바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 사건을 다루지 않고 6:45-8:26절에서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신 사건’(6:45-52),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사건’(7:24-30),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8:1-10) 등 많은 사건을 다룬 후에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마가복음 6:45-8:26절의 내용을 생략하고 곧바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인 사건 후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신앙 고백 사건은 오병이어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사건 후에 따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6:14-15절에 보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면서 억지로 잡아다가 임금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떠나서 조용한 곳에 가셔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제자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다시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세례 요한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엘리야라 하고,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제자들의 대답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는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도 고쳐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런 이적 사건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능력 많으신 어떤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으시고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로 메시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 곧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경계하시면서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신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와 실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오해할 것을 염려하여 경계하신 것입니다.

 

당시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했지만 그도 예수님을 군사적인 메시아로 여겼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8:2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자기 일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한다고 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간했습니다. 곧 ‘예수님! 죽으면 안 됩니다’고 하면서 책망을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막 8:33).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는 이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누가가 베드로를 존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여튼 이 말씀을 기초로 해서 볼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파악했지만 군사적인 메시아로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아직 하나님의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에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뿐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군사적 메시아사상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군사적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하면서 예수님을 잡아다가 억지로 자신들의 임금을 삼고자 했습니다(요 6:14-15). 이처럼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군사적인 메시아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메시아사상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들이 범죄 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이스라엘의 왕조가 끊어집니다.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들이 돌아오지만 왕조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기를 대망하는 것입니다. 시편 2:1-3절을 보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분이 비웃으시며 분노하시면서 행하시는 일이 나의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시편 2:4-6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온에 세운 왕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는 철장권세로 그들을 질그릇 같이 부수어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고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2:7-12절을 보면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시편이나 이사야 선지서나 다니엘서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예언들을 통하여 무엇을 기대했겠습니까? 그들의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메시아에 대한 대망이 무르익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의 시대 상황이 어떠합니까? 로마가 유대 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방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다윗과 같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와서 자기들을 구원하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은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윗 왕과 같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갈릴리 나사렛 그 시골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사람들이 보았던 것입니다(참조. 요 1:46). 그런데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도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과 같이 그도 군사적인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장로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다고 하시자 예수님을 붙잡고 책망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다고 밝히면 무리들의 오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말한 것처럼 무리들은 당장 예수님을 잡아다가 자신들의 임금을 삼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받으신 후에 이것을 곧 자신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신 후에 자신이 어떤 메시아가 되시는지를 비로소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받으신 후에 비로소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2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받으신 후 무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도록 경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그리스도가 되시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자 비로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곧 자신이 어떤 그리스도가 되시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우리가 앞에서 봤습니다만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6:13-28절과 마가복음 8:27-38절에 보면 베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사단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마 16:23; 막 8:33).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받으시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6:17-1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시몬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천당과 지옥을 한 순간에 오고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심하게 책망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베드로와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고난 받는 것은 이해되지만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사람의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어떤 그리스도, 어떤 메시아를 원하고 있습니까?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아 곧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메시아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 집안 잘 되게 해 주시고, 우리교회 잘 되게 해 주시고, 우리나라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정화수 떠 놓고 가족 잘 되게 해 달라고 천지신명께 비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런 우리들에게 베드로를 책망하듯이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우리가 이 책망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믿는 그리스도가 어떤 그리스도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그리스도 곧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그리스도이신지를 말씀해 주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23-26절을 보면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아무든지 자신을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곧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사실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부인’은 삶의 우선적인 것에 대하여 마음을 철저히 바꾸는 참된 믿음과 회개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평행을 이루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뜻을 전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자기 자신에게서 예수님에게로 바꾸어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사형장으로 가는 것을 뜻하므로 이것은 날마다 반복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을 때 ‘좇으라’라는 말은 ‘아꼴루테이또’(ajkolouqeivtw)라는 말인데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단회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자기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입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이방인들이 로마에 반역하거나 흉악한 범죄자에 대하여 십자가에서 처형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자기 목숨을 잃는 길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길이 구원의 길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4). 그렇습니다.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멘!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자 합니까?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자기 목숨을 구원하는 삶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삶, 곧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 삶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잃게 된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면 곧 예수님을 위해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이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구원의 길을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반문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26-27절을 보면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말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을 명합니다. 만약 자신과 자신의 말을 부끄러워하면 자신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장차 수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 중에 오실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미래적 영광은 28-36절에서 다루어지는 변모사건에서 미리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27절에서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변모사건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볼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6-27절의 이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큰 위로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생명을 얻고 주님의 그 영광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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