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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9:37-45

2020년 누가복음 공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말씀:누가복음 9:37-45

 

우리는 지금 누가복음 9장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준비시켜서 자신의 사역에 참여 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귀신과 질병을 제압할 능력과 권세를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고 해서 그들이 당장 신비롭게 슈퍼맨이 되거나 성자들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은 귀신에 사로잡히는 외아들을 고쳐주지 못하는 무능력과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고, 서로 누가 크냐며 경쟁하며 다투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마리아의 마을에 불을 내려서 심판을 해야 한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자신들의 무능력과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 아래에 있던 아홉 명의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어떤 사람의 귀신들린 외아들을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그들 앞에서 변모되셨습니다(9:28-36).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 앞에서 변모되신 사건이 있었을 때에 아홉 명의 제자들은 산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외아들을 데리고 와서 아홉 명의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곧 아홉 명의 제자들은 귀신들린 그 외아들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자 그 아비는 예수님께 나아와 자초지종을 말한 후에 네 아들을 돌아봐 달라고 곧 자신의 외아들을 고쳐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하시며 책망하신 후에 그 아이를 데려오라 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7-40절을 보면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 질러 가로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이하였습니다. 여기서 ‘이튿날’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사건이 있은지 다음날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큰 무리가 그들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 질러 말하기를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자신의 아이의 상태와 예수님께서 안 계실 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자세히 말합니다.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9:14-29절과 비교해 보면 분량이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과 소년의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극적인 대화 곧 마가복음 9:21-24절에서 믿음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아버지의 절규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21-24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 보면 이 장면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그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축약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에서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라고 했을 때 ‘외아들’은 원문으로 보면 ‘모노게네스’(monogenhv")인데 이 말은 ‘유일한 아들’이라는 말로 누가복음에서 세 번째이면서 마지막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모노게네스’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성육신과 관련해서 사용됩니다(요 1:14, 18, 3:16, 18). 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단순히 생물학적 의미 곧 독자의 목숨을 위해 간청하는 아비의 심령을 전달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아들을 치유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한번 보기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38). 왜 아버지는 아들을 치유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돌아봐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아마 이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아들을 돌아보기만 하면 깊은 동정심으로 치유해 줄 것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39-40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9-40절을 보면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 사람의 아들은 단순히 아픈 정도가 아닙니다. 귀신으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아들을 사로잡으면 부르짖고 경련을 일으키고 쓰러져 거품을 흘렸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7:15절에 보면 마태는 이 아들의 병을 간질병으로 명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의 질병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말하지 않고 도리어 귀신의 역사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의학적으로 그 질병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지 않는 대신에 마태나 마가에 비해 소년의 증상과 아버지의 고뇌를 보다 자세하고, 시각적이고, 공감력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의사로 알려진 누가는 왜 소년의 증상을 고대 세계에 널리 진단되고 있었던 ‘간질’이 아니라 ‘귀신’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했을까요? 우리가 정확히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누가는 아마도 단순히 육체의 질병보다는 적대적인 영적인 능력을 제압하는 예수님의 능력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산 아래에 있던 아홉 명의 제자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변모 하셨을 때 산 아래에 있던 아홉 명의 제자들은 소년의 상태를 보고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무력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아버지의 간구를 들은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1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산 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산 아래에는 이 모양입니다. 귀신에 사로잡히는 한 아이를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이 모습은 역시 모세 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있을 때, 곧 그 영광 중에 있을 때에 산 아래에서는 어떠했습니까?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과 패역한 세대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에 사로잡히는 한 아이를 고쳐주지 못하는 제자들을 직접적으로 책망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를 향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질책하십니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산 아래에서 일어나는 그 일을 보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였을까요? 누가복음에서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들은 왜 고쳐주지 못했느냐고 물었을 때에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7:19-20절에 보면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9장에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9:28-29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병행구절의 말씀을 볼 때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는 세상이 패역한 세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아이 하나 고치지 못하는 그 시대를 향해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7장에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그 시대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9:1-6절에서 살펴본 대로 제자들은 전도여행에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놀라운 능력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제자들이 왜 귀신들린 아이 하나 고쳐주지 못했을까요? 우리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들의 경험을 의지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세 제자들만 데리고 가신 예수님으로 인해 인간적인 생각에 빠졌는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우리는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아이 하나 고치지 못하는 그 시대를 향해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신 후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43a절을 보면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그 아이를 데리고 오자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거꾸러뜨리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가 ‘레그뉘미’(rJhvgnumi)인데 이 단어는 권투선수나 레슬링 선수가 상대 선수를 바닥에 내던지는 모습을 뜻합니다. 누가복음의 다른 곳에도 보면 귀신에 사로잡힌 상태는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폭력적인 측면에서 묘사됩니다. 귀신은 희생자를 바닥에 던지고(4:33-35), 듣지 못하게 만들고(11:14), 비참하고 파멸시키는 고통에 내던져 버립니다(8:26-38). 이에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음 받은 아이를 그 아비에게 도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꾸짖음 한 마디에 귀신이 떠나가고 아이를 낫게 하시는 놀라운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를 목도한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명이 악의 세력을 대면하여 패배시키시는 것임을 입증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명은 4장에 보면 첫 번째로 광야에서 마귀와 대면한 데서 나타났었습니다. 누가복음 4:1-13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누가는 예수님의 사명을 입증하기 위해 소년의 악한 상태를 의학적 원인보다는 영적인 원인으로 묘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더 강한 자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0-22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사역이 나타날 때 일어나는 현상은 평화가 아니라 충돌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행동으로 마감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고, 소년을 치유하고, 소년을 아버지에게 돌려줍니다. 예수님의 신적 능력은 신체의 치유로 나타납니다. 신체의 치유는 모든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 받은 외아들을 아버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7장에서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시고 그 어미에게 돌려주신 것과 같이 귀신의 권세에서 벗어난 외아들을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족을 회복하는 자로 드러내십니다.

 

누가는 무리가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는 말로 오늘 이야기의 결론을 내립니다. 43a절을 보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위엄’은 ‘메갈레이오테스’(megaleiovth")인데 이 단어는 누구도 능가 할 수 없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베드로후서 1:16절에 보면 변모의 산 정상에서 세 제자들이 목격했던 ‘위엄’을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 여기서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했을 때 ‘위엄’이 바로 ‘메갈레이오테스’(megaleiovth")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가 이 단어 곧 ‘메갈레이오테스’(megaleiovth")를 사용함으로써 소년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를 치유한 사건을 통해서 변모산에서 세 제자들이 본 그 위엄을 산 아래에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는 오늘 본문의 귀신들린 한 소년을 고쳐 주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패역한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패역한 시대 하나님 나라 복음을 힘써 전파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43b-45절을 보면 “저희가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 또 저희는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행하신 일로 인해 기이히 여기며 신기하게 여길 때 제자들에게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귀에 담아두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인자가 곧 예수님께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는 것입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운다는 것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귀담아 두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것도 아니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것도 아닙니다. 사실 변모하신 영광스러운 모습이나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신 영광스러운 위엄은 기억하지 말라고 해도 기억할만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은 귀에 담아 두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모산에서 구름 속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35). 지금 제자들 앞에서 놀랍고 두려운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들이 귀에 담아 두어야 할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때 비로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8-27). 이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다시 자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묻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믿고 주님의 제자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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