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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슥 9:1-10
강설날짜 2019-09-01

2019년 스가랴서 공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왕

말씀:스가랴 9:1-10

 

스가랴 1-8장까지는 8가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특히 7-8장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9-14장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곧 환상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그 대적을 심판 하실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나라를 만들어 내실 지를 말씀합니다.

 

9-14장은 스가랴서의 세 번째 주요 단락으로 9:1절과 12: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는 말씀으로 감싸기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9-14장 말씀은 예언적 선포를 뜻하는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이끄는 두 개의 세부 단락 곧 9-11장, 12-14장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이 두 단락의 특징적 차이점은 첫째는, 9-11장은 남 유다와 요셉 곧 북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지만, 12-14장은 다윗의 집 곧 예루살렘 거민들 그리고 유다 집에 초점을 맞출 뿐 요셉 지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9-11장은 ‘그 날에’라는 말을 단 한차례 사용하지만(9:16), 12-14장은 이 표현을 매우 많이 사용합니다(12:3, 4, 6, 8, 9, 11; 13:1, 4; 14:4, 6, 8, 9, 13, 20, 21). 셋째는, 12-14장에는 ‘보라’라는 뜻의 ‘hNEhi 힌네’라는 히브리어가 등장하여 12-14장을 12:2-13:6절과 14:1-21절로 세분화 시켜주는 반면 9-11장은 이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9-11장과 12-14장이 이처럼 각각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주요 단어들과 주제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9:1-10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1-8)과 한 왕이 임하실 것을 말씀합니다(9-10). 그 왕은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왕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어버리고, 전쟁하는 활도 끊어버리고, 이방 사람들에게 화평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의 나라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눈이 여호와를 향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여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고 합니다. ‘경고’란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aC;m' 마샤’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중대한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고 다메섹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경고의 내용 곧 여호와의 중대한 심판이 그곳에서 시행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드락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여기서만 나타나는데 수리아 지방의 북쪽 아르바와 하맛 사이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그리고 다메섹은 구약 성경에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도시 중의 하나로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틴 중간에 위치한 수리아의 주요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하드락과 다메섹은 이스라엘의 북쪽지역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늘 괴롭힌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중대한 경고의 말씀 곧 중대한 심판의 말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중대한 심판이 시행되면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상 사람’은 원문으로 보면 ‘아담’(!d;a;)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이어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조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이 말은 모든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여호와를 우리러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 곧 온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1절의 하드락과 다메섹만이 아니라 그와 가까이 있는 하맛과 두로와 시돈까지 하나님의 경고가 주어집니다. 하맛은 다메섹과 더불어 수리아의 대표적인 성읍으로 이스라엘과 여러 차례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로와 시돈은 예루살렘 북서쪽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넓은’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문에 보면 ‘메오드’(daom])라는 말인데 이 말은 ‘많은’, ‘풍부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넓은 지혜’란 ‘풍성한 지혜’를 말하는데 이 지혜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항해술과 상업술이 뛰어난 민족입니다. 이들은 그런 지혜로 무역을 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보장 곧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장벽과 파수대를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진흙같이 많이 쌓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만을 믿고 교만하였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심판 하십니까?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쫓아내다’는 말은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야다쉬’(vr'y)라는 말인데 ‘소유권을 빼앗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바다의 권세를 치신다”고 했는데 이 말은 두로의 권세를 하나님께서 바다 가운데로 쳐 넣으실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두로와 시돈은 알렉산더에 의해 그 성읍들이 허물어지고 바다에 쳐 넣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고 합니다. 알렉산더가 쳐 들어 왔을 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도망간 장소가 그들의 성전 안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으로 피하면 자신들의 신이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 성전으로 도망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불사름으로 그들은 전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오늘 본문 4절의 말씀처럼 불에 완전히 삼켜진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B.C. 333년에 알렉산더에 의해 완전히 함락되고 1만 여명이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3만 여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합니다. 그 성읍은 완전히 불태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중대한 심판이 예언하신 그대로 시행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에스겔서 28장에서 두로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는데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에스겔서 28:1-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와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하고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지라. 너를 살륙하는 자 앞에서 네가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의 수중에서 사람 뿐이요 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두로가 그들의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고, 금과 은으로 그 곳간에 저축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큰 지혜로 무역을 하여 큰 재물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로인해 교만해 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신을 신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의 중심에 앉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과 같은 이런 모습이 오늘날 이 시대의 모습이 아닙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의 나라들은 다 자신들의 힘과 기술로 부를 쌓고자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 나라들을 보면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해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고, 우리나라도 일본과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힘과 기술로 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경제성장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더 잘 사는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실 한국 역사상 지금만큼 부요한 적이 없었습니까? 해외 여행객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고급식당은 차고 넘칩니다. 세계의 유명한 명품이 한국에서 제일 잘 팔린다고 합니다. 영화도 우리나라에서 먼저 개봉해 본 후 다른 나라에 개봉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3절에 나타난 두로의 모습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든든한 요새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적이 쳐들어와도 무너뜨릴 수 없는 든든한 성벽을 갖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세상의 지혜로 수많은 은과 금을 벌어들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어느 개인이거나 간에 이것을 목표로 달려갑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세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고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5-7절을 보면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블레셋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옆구리의 가시처럼 괴롭힌 나라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범죄 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몽둥이로 사용하셨지만 이런 블레셋에게도 경고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스글론은 두로의 멸망을 보면서 두려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에그론은 두로와 가까운 지역이라서 두로를 의지했는데 두로가 망함으로 그 소망으로 여긴 것이 도리어 수치가 된 것입니다. 가사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은 거민이 없어지고, 아스돗은 잡족이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심판하시는 이유는 블레셋의 교만을 끊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교만을 끊고 블레셋의 입의 피와 그 잇사이의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피’는 희생 제물의 피를 말하고, ‘가증한 것’은 우상에게 받쳐진 제물을 뜻합니다. 따라서 블레셋인들의 입과 잇사이에서 그 피와 가증한 것을 제거한다는 말은 그들의 우상숭배의 행위를 근절시키겠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남은 자들이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돌아온 자들이 유다의 한 두목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에그론은 여부스와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부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쫒아내지 못하고 함께 살게 된 가나안 부족입니다(수 15:63). 그들처럼 이제 한 가족으로 편입이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눈으로 볼 것이라고 합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하신 것처럼 그들을 지켜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2:5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성곽이 되어주심으로 그 어떤 원수의 세력도 침범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러한 집을 친히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1-8절에서 말씀하시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라고 외칩니다. 선지자는 왜 이들이 기뻐하고 즐거이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새로운 집을 만드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실 왕을 보내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임하시는데 그 왕은 어떤 왕이라고 합니까?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는데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를 타신다는 것입니다. 공의를 베풀며 구원을 베풀 왕이 임하는데 그는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딸은 크게 기뻐하고, 예루살렘의 딸은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나오는 나라들은 다 힘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들은 말과 병거를 갖추고 있었고 든든한 요새와 은과 금이 많은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들을 물리치고 평화의 왕국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더 강한 힘을 가진 자로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한 나라들로부터 구원을 받고 평화를 누리려면 더 큰 힘을 가진 왕으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을 물리치고 구원을 베풀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왕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실 왕인데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실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실 왕이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왕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다는 것입니다. 전쟁하는 활도 끊는다는 것입니다. 화평을 이방에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에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실 왕은 평화의 왕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는 이 말씀은 장차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의 이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1:1-9절을 보면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잡히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나귀 새끼를 타고 십자가를 지신 우리의 왕을 우리는 지금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지금도 우리는 말과 병거를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금과 은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3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라면 예수님께서는 무력으로 정복했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화평의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만들어진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세상에서 통하는 힘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가는 그 초라한 왕의 뒤를 따라가는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이 소식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때 이 나라의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세상 힘을 원했던 나라들은 다 불살라 질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참예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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