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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슥 11:1-17
강설날짜 2019-09-22

2019년 스가랴서 공부

은 삼십에 팔린 목자

말씀:스가랴서 11:1-17

 

우리는 스가랴서 9장과 10장 말씀을 통해서 메시아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11장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거부한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구조를 보면 1-3절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스가랴 선지자의 애가가 기록되고 있고, 4-14절에서는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아의 사역과 이러한 메시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척할 뿐만 아니라 은 삼십에 팔아버릴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17절에서는 참된 목자를 배척한 이스라엘이 거짓 목자 아래서 고난 당하게 될 것과 거짓 목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절을 보면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레바논아 네 문을 열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북방에서 시작될 것을 말씀합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산이 높고 험악하여 적군이 침입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앗수르의 산헤렙이 이곳으로 침입해 왔고(왕하 19장), 훗날 로마군도 이곳을 거쳐서 유대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훼멸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됨으로 평소에 그들이 자랑거리로 여기는 것들 곧 백향목, 잣나무, 상수리나무들이 다 불에 타고 무너져서 황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로운 것이 다 무너졌기에 목자는 곡하는 소리가 나고 어린 사자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기서 ‘목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말하며, ‘어린 사자’(케피림, !yrIypiK)는 젖먹이 사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젊은 사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나고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요단의 자랑이 황폐하게 됨으로 인해 그들이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곡할지어다. 왜냐하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지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려졌도다”,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이렇게 세 번이나 반복해서 곡하라 것은 레베논과 바산의 아름다운 나무들이 넘어졌고 파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목자들과 지도자들이 심판 받음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악한 지도자들을 심판하셔서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거주할 곳으로 만드십니다.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 갔던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길르앗과 레바논으로 돌아와 살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합니다(10:10). 악한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은 백성들에 구원의 소식입니다.

 

4-5절을 보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목자의 역할을 하라고 합니다.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잡힐 양’이란 도살당할 위기에 놓여 있는 양을 가리킵니다(시 44:22). 이 말씀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적으로 살육당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A.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5절을 다시 보면 “산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고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산 자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는 이방의 원수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판 자들’이란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압제하에 놓여 있는 것을 기회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백성들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착취하여 부요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요케 되었다고 여호와께 찬양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백성을 사고파는 자들은 이방인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합세한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서도 목자들이 양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바로 삯군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6절을 보면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시지 아니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심판이 선고되었는데도 여호와께서는 스가랴를 통해 잡힐 양떼를 먹이라고 합니다. 스가랴는 선한 목자 메시아를 대신하는 자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7-14절을 보면 “내가 이 잡힐 양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쌔.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잡힐 양떼이지만 목자를 보내셔서 먹이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가련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가련한 양들을 위하여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연락’이라고 하여 그들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막대기’는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lQem(마켈)’ 또는 여성형hl;Q]m(마케라)’ 인데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목자의 목양도구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도구가 ‘은총’과 ‘연락’이라는 것입니다. ‘은총’(!['nO, 노암)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연락’(lb,j, 헤벨)은 하나님의 백성들간의 결속된 유대관계 곧 상호언약에 근거한 결속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총과 연락으로 양들을 돌보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달 동안에’라는 말은 정확히 30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구한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극히 짧은 기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어버리겠다는 말은 속히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세 목자’는 누구를 말할까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들을 끊어버리겠다 곧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끊어버리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8절을 다시 보면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 목자를 끊어버리시는 이유가 내 마음이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세 목자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온 백성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고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유대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그에 동조한 모든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미가서 3:9-12절을 보면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의 두령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다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을 다 끊어버리는데 문제는 이러한 자들의 횡포를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30-31절을 보면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고 했습니다. 백성을 공의로 다스려야 할 두령들이 타락하였으면 백성들은 그들을 탄핵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좋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의 지도자들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똑같이 타락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12절을 보면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라버린 것입니다.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날에 그 목자에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 곧 언약에 신실한 남은 자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줄 알아보았습니다. 백성들로부터 거절당한 선한 목자는 목자의 직무를 포기합니다.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 곧 수고한 대가를 내게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었습니다. 은총과 연락으로 양들을 돌보러 온 목자에 대한 대가로 은 삼십을 달아 준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노예의 몸값인 것입니다.

 

13-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 곧 값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며 연락이라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형제의 의를 끊으려고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상징적 행위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결속이 깨뜨려짐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이미 신약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슨 말씀이 떠오릅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판 사건이 떠오를 것입니다. 마태복음 27:3-10절을 보면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 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가랴라고 하지 않고 예레미야라고 합니다. 왜 예레미야라고 하는 것입니까? 은 삼십에 팔릴 것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이지만 그런 행동을 한 자들의 심판에 대해서는 예레미야가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 18:2-6; 32:6-15). 이렇게 두 예언자의 예언을 인용할 경우에는 더 잘 알려진 예언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수법은 당시에 통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은 삼십에 팔리는 목자는 또다시 다른 목자의 역할을 합니다. 오늘 본문 15-1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할찌니라.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화 있을찐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고 했습니다. 은 삼십에 팔린 목자는 은총과 연락이라는 막대기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꺾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목자의 기구를 취하게 한 목자는 어떤 목자입니까?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않고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고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한 그 굽을 찢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목자에 대하여 저주가 선포됩니다. 17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두 목자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목자는 가련한 양떼를 위하여 은총과 연락으로 왔는데 이 목자를 싫다고 은 삼십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목자는 양떼를 잡아먹는 목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자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이런 모습은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대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은 삼십에 팔리시고 그 몸값을 가룟 유다가 챙겼습니다. 가룟 유다가 양심의 가책이 되어 그 은 삼십을 다시 성소에 던져놓고 자신은 자살을 합니다. 그런데 그 돈은 피 값이기에 성전금고에 넣어두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하여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만들었습니다. 은총과 연락으로 오신 목자는 이렇게 은 삼십에 팔려 죽임을 당하시고, 살찐 양을 잡아먹는 거짓 목자는 환영받는 일들이 구약에서 그대로 일어났으며, 또 예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은총과 연락은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저주와 심판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려 죽으심이 언약을 파기한 결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자기 백성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신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선한 목자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0:11-18절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양의 문입니다(요 10:7-10).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선한 목자로 오셨지만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거짓 목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양의 주인이신 예수님께로 양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배를 불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 목자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듯이 거짓 선생들이 교묘하게 자기들의 종을 삼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여 잡아먹고 사로잡고 뺨을 칠지라도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거짓 선생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의 음성을 듣고 사시겠습니까? 은총과 연락으로 오시는 목자,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자기 백성을 이끄시는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목자는 은 삼십에 팔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아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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