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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1:5-13

2020년 누가복음 공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누가복음 11:5-13

 

지난 시간에 우리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이어서 기도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고 했습니다(2-4). 원문으로 보면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사용된 동사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사용된 동사들이 명령형인 것은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가졌던 신뢰심으로 예수님의 기도를 기도해 내도록 촉구합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시는 성부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신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말씀하신 후에 계속해서 오늘 본문에서 비유를 통해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 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 기도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참된 기도는 기대할 뿐만 아니라 끈질긴 기도임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5-8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사람들이 낮의 열기를 피하려고 밤에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비유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 밤중에 예기치 않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방문이라 대접할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꾸러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동에서는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손님을 환대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밤중이라 이미 문이 닫혔고 아이들과 함께 침소에 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가정에서는 가족 모두가 한 매트 위에서 잤습니다. 그러므로 밤중에 친구의 요청을 받아 가장이 일어나면 온 가족의 취침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친구가 손님에게 줄 음식을 부탁한다면 자고 있던 친구가 일어나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음식을 구하러 온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고 있던 그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8절 말씀에 보면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요청에 응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무엇입니까? 친구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강청함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강청함이란 무슨 뜻입니까? ‘강청함’이란 원문으로 보면 ‘아나이데이아’(ajnaivdeia)인데 이 단어는 ‘집요함’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뻔뻔함’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서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요구를 들어주는 결정적인 동기는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의 요구가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본 비유의 핵심은 누가복음 18:1-5절에서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하는 비유의 핵심과 비슷합니다. 누가복음 18:1-5절을 보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준 것은 과부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과부가 계속해서 와서 자신을 번거롭게 하니까 귀찮아서 곧 그녀의 끈질긴 요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녀의 요청을 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18장에서 다루는 이 두 비유는 기도에서 집요함과 끈질김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상이한 두 비유의 주제를 끈질김으로 설정한 사실은 기도와 관련해서 이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간청하는 자의 끈질김은 ‘강청함’이라는 단어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청함’은 앞에서 본 대로 ‘아나이데이아’(ajnaivdeia)인데 이 단어는 헬라 문헌에서 매우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무례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 사용된 이 단어의 함의는 자극적이고 거칩니다. 비유는 기도하는 사람의 예절 바름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비유의 강조점은 ‘강청함’ 곧 결코 단념하지 않는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의 핵심은 끈질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염치 없는 뻔뻔함으로 나아가는데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 보면 밤중에 문이 닫히고 온 가족이 이미 잠이 든 상황에서 요청한 것을 볼 때 ‘집요함’의 의미도 있지만 ‘뻔뻔함’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8절의 비유의 설명에 기초해서 보면 밤에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친구의 요청에 응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강청함 때문이었습니다. 곧 그 친구의 요청이 귀찮아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됨을 인하여서는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강청함 때문에 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도 불편을 감수하고 요청을 들어준다면 불편할 때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더더구나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비유에서처럼 한 밤중에 친구 집에 무례하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파탄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기도에 귀찮아하거나 기분 나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의 기도에 늘 깨어 있는 분이십니다. 그 기도에 늘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 누구든지 끈질김과 인내심과 심지어 염치가 없는 뻔뻔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아바 아버지로 당신의 자녀들의 솔직하고 간절한 기도를 귀찮아하거나 기분 나빠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 강청함으로 나아가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9-13절을 보면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계속해서 설명합니다. 5-8절에서는 강청하는 기도 곧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를 강조한 반면에 9-13절에서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성품을 강조합니다. 9-13절 말씀은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7:7-11절 말씀과 비슷합니다. 마태복음 7:7-11절을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9-10절을 다시 보면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내용의 요지는 구약에도 나타납니다. 이사야 55:6절을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29:12절을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약의 내용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위를 주입시켜서 가르칩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kajgw; uJmi'n levgw)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강조하는 표현이며, 기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교사의 중요성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결론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구하다’(aijtei'te)에 사용된 동사가 ‘아이떼오’(aijtevw)인데 이 동사는 ‘기도하라’는 뜻으로 자주 쓰입니다(마 18:19; 막 11:24; 요 11:22; 엡 3:20; 약 1:5-6, 4:3). ‘찾으라’(zhtei'te)에 사용된 동사가 ‘떼제오’(zhtevw)인데 이 말도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뜻입니다(삼하 21:1; 시 24:6, 27:8; 호 5:15). ‘두드리라’(krouvete)에 사용된 동사가 ‘크로우’(krouvw)인데 이 말도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탈무드에서는 기도를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을 헬라 원문으로 보면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것이 간헐적이거나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관여하는 것과 습관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그 기도가 응답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결과가 잠정적이거나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 계속적이고 습관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고 그 은혜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그런데 여기서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니므로 마치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듯이 표현한 것은 과장법입니다. 곧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원칙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의 강조점은 기도하라는 것이며, 기도는 응답 받는다는 것입니다. 과장법의 사용은 이러한 강조점을 약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응답된다는 사실을 비유를 통해서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11-12절을 보면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고 합니다. 어떤 아이가 아버지에게 생선이나 알을 달라고 하는 이런 장면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선을 달라고 할 때 뱀을 줄 아비가 있습니까? 알을 달라고 하는 아비에게 전갈을 줄 아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만약 그런 아비가 있다면 그 아비는 정상적인 아비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뱀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옵히스’(o[fi")인데 독이 없는 일반적인 뱀을 가리킵니다. 독이 있는 뱀은 ‘에키드나’(Έχιδν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뱀은 독이 있는 뱀이라고 규정할 필요는 없지만 다음 구절에서 나오는 전갈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뱀은 분명 해로운 그림으로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선과 알을 구하는 아이에게 뱀과 전갈을 줄 아버지가 있겠느냐는 비유의 말씀을 하신 후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녀라 할지라도 아비는 그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합니다. 또한 아무리 악한 아비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만큼은 좋은 것을 주고자 합니다. 이것이 아비와 자식 간의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느 인간의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는 참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인간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버지도 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아버지가 저럴 수 있는가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인간 아버지와 비교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비교도 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참된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의 어느 인간 아버지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참으로 좋은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뱀과 전갈을 의미하는 모든 해로운 것을 무너뜨리고자 하시지 이런 것들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2절에 보면 제자들이 기도할 때 ‘아버지여!’라고 하며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자녀에게 뱀이나 전갈을 주지 않습니다. 곧 자녀들에게 악하고 해로운 것을 주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참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천부께서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에 대한 내용은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7:11절에 보면 ‘좋은 것들’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7:11절에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좋은 것들’ 곧 물질적인 것에 그 초점을 맞춘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는 보다 신학적인 이해를 더 반영하고 있습니다. 곧 ‘성령’을 주신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구속주로서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있게 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정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잘 알고 계셨고 이를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하는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보내실 준비를 진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에게 오실 것이며, 그들이 기도하여 구하는 바를 이루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구하여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어 주신다고 합니다. 다른 보혜사는 성령을 말합니다. 이 보혜사는 진리의 영입니다. 이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가 오셔서 제자들 속에 있게 됩니다. 그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진리로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4:25-29절을 보면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아버지께로 가시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평안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복음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께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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