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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2:22-34

2021년 누가복음 공부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말씀:누가복음 12:22-34


지난 시간에 우리는 형을 명해 유업을 자신과 나누게 해 달라는 자에게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며 어리석은 부자 비유로 말씀해 주시는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지난시간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2-23절을 보면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을 명하여 자신과 유산을 나누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자에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목숨’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프쉬케’(yuchv)입니다. 이 ‘프쉬케’는 19-20절에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지난 시간에 본 19-20절을 보면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사용한 ‘내 영혼’이라는 말이 바로 원문으로 보면 ‘프쉬케’(yuch)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이 ‘프쉬케’(yuch)를 사용한 것은 어리석은 부자의 교훈을 제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함입니다.


22-23절을 다시 보면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핵심 단어가 ‘염려’입니다. 22-26절에 보면 ‘염려’라는 말이 세 차례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22, 25, 26). 음식과 옷과 집은 인간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을 나타냅니다. 곧 ‘의식주’는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염려’는 이런 것들에 대한 곧 의식주에 대한 대비와 계획이 아니라 지나친 걱정을 가리킵니다. 이런 걱정은 두려움과 염려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하고 타락한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이 의식주 문제는 고생과 어려움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인생이 짊어지고 가야할 몫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걱정은 불면증과 탈진과 비통으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창세기 3:17-19절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또 전도서 4:4-6절을 보면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전도서 6:7절에도 보면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지혜 문헌의 중심주제인 ‘염려’를 강조합니다. 행복은 인간이 애써서 얻어내는 산물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아버지의 신실하시고 돌보시는 손에 맡기는 것을 배우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신실하게 돌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불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은 인생의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진다고 해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또 다른 더 큰 필요를 요구합니다. 곧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더 많은 물질을 쌓아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우리 인생은 늘 염려합니다. 그러나 이런 염려는 자신의 목숨을 도리어 해하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곧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23).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이시고 입히시며 우리를 신실하게 돌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곧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할 가치 있는 교훈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들’을 자연의 교사들로 사용합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6:26절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자연의 교사들을 ‘공중의 새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신약의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까마귀들’이라고 합니다. 토라에는 ‘까마귀’를 부정하고 무가치한 새로 규정합니다(참조. 레 11장; 신 14장).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과 그 새끼들도 은혜로 먹이십니다. 욥기 38:41절을 보면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고 했습니다. 또 시편 147:9절을 보면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까마귀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습니다. 창고도 없고 곡간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위해 음식을 공급하시며 그들을 기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까마귀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런 후에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반문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까마귀들도 돌보시는 데 너희 제자들을 더더구나 돌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단지 불신의 태도가 아니라 무익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26절을 보면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우리 중에 누가 걱정하여 키(생명)를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도리어 스트레스 받아서 키가 더 자랄 수 없습니다. 생명이 단축됩니다. 여기서 사람의 키에 한 규빗을 더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염려하는 것의 불합리성을 강조하기 위해 불쑥 유머를 끼워 넣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염려함으로 자신들의 키(생명)를 늘릴 수 없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제어할 수 없는 더 큰 것들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고 합니다. 작은 것도 염려함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더 큰 문제도 염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7-28절을 보면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고 합니다. 까마귀를 생각하여 보라 하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고 합니다. 백합화는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않지만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하시며 “믿음이 적은 자”라고 책망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 있다가 내일 불태워지는 풀에까지 미칩니다. 그런데 이 풀보다 더 귀한 제자들을 입히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9-32절을 보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한 자연의 교훈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신 후에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신 후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도 말고 근심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호들갑을 떨지 말아야 합니다. 구하지도(zhtevw, 제테오-찾다, 갈망하다) 말며, 근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근심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오늘 본문의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학자들 간에 많은 논쟁이 되는 말씀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근심하지 말라’는 말을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곧 29절의 ‘근심하지 말라’는 이 구절을 22절과 25절 그리고 26절에서 말하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과 그 의미가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문맥에서 추론한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과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원문으로 보면 전혀 다른 단어가 사용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메 메림나테’(mh; merimna'te)입니다. 그런데 ‘근심하지 말라’는 ‘메 메테오리제스테’(mh; metewrivzesqe)입니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본 단락에서 세 번이나 사용된 ‘염려하지 말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29절의 ‘근심하지 말라’ 곧 ‘메 메테오리제스테’는 신약에서 이곳에만 등장합니다. 만일 누가가 여기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자 했다면 ‘메림나테’(merimna'te)를 다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메림나테’가 아니라 ‘메테오리제스테’(metewrivzesqe)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를 말하고자함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가 왜 여기서 ‘메림나테’(merimna'te)를 사용하지 않고 ‘메테오리제스테’(metewrivzesqe)를 사용했을까요? ‘메테오리제스테’(metewrivzesqe)의 기본형이 ‘마테오리조’(metewrivzw)인데 이 동사는 ‘염려하다’가 아니라 ‘자신을 높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포적인 의미는 ‘주제 넘는’, ‘오만하게 되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재화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어리석은 부자처럼 너희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거나 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마테오리조’(metewrivzw)’는 ‘바다에 배를 띄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단어는 항로에서 벗어나 항해하는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보실 것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우유부단하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보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 가운데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흔들림이 없이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29절에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세상 백성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 백성들 곧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방 백성과 제자들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 대조는 유대 랍비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차이를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70인 역이나 헬라어 신약 성경에는 오늘 이 본문 외에 한 번도 사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방백성과 대조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자들의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은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31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직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해야 할 목표는 이 세상에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지는 것을 구할 때 다른 모든 것 곧 의식주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노력과 공덕으로 자신의 모든 부를 얻었다고 오만하게 생각했습니다(16-21).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추구할 때 곧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그들에게 필요한 의식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질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보면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것 곧 하나님 나라 그 자체를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것 곧 하나님 나라 자체를 주시는데 어떻게 그 작은 것 곧 의식주에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시고 우리가 오직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33절을 보면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구할 것을 명하신 후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할 것을 명령하심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합니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명령은 예수님의 대표적인 명령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행위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도둑이나 썩어짐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있는 보물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구제하는 자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도적이 가까이 하는 일도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0:2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자기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에게 하늘에서 보화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에서 보화가 있다”는 말은 ‘영생’ 곧 ‘구원’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33절에서 말하는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은 하나님 나라를 말하지만 또한 구원을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늘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하늘에 두고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모습입니다. 마음을 하늘에 두고 사는 삶은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삶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하늘에 두고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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