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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2:35-48

2021년 누가복음 공부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말씀:누가복음 12:35-48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아니한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5-36절을 보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신 후에 계속해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릴 때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허리에 띠를 띠다’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출애굽기 12:11절에 보면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허리에 띠를 띠고 급히 식사를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식사를 했다는 것은 곧장 떠나기 위한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허리에 띠를 띠다’는 말은 신속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또한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것은 이스라엘에 등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면하는 히브리식 비유를 반영합니다(눅 8:16). 그러므로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말은 어둠 속에서도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인이 혼인 잔치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릴 때 곧 그 문을 열어 주기 위해서 기다리는 종과 같이 되라고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혼인 잔치는 주로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 기간도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하고 길면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혼인 잔치에 참석한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위해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밝혀 놓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준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37-38절을 보면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고 합니다. 주인이 돌아와 문을 두드렸을 때 즉시 와서 문을 열어주는 깨어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종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주인이 혹 이경이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밤을 네 시간씩 세 번으로 나눴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유대인들의 관습은 로마의 관습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밤을 세 시간씩 네 번으로 나눴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경’ 혹은 ‘삼경’이라는 말은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시간 개념으로 보면 밤 9시부터 12시, 밤 12시부터 새벽 3시입니다. 유대인들의 시간 개념으로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새벽 2시부터 새벽 6시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이경’과 ‘삼경’이라는 말은 ‘한 밤중에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이처럼 한 밤중에 돌아올지라도 그때까지 깨어 있는 종들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37절을 다시 보면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보면 깨어 있는 종이 복이 있는데 그 깨어 있는 종을 위해서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깨어 있는 종들을 위해서 주인이 띠를 띠고 나아와 종들을 수종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사실 종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종들이 자기 할 일을 했다고 해서 주인이 보상하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주인이 띠를 띠고 나아와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 들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17:7-10절을 보면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그렇습니다. 종이 자기 할 일을 했다고 해서 주인이 사례를 하지 않습니다. 종은 명령 받을 것을 다 행한 후에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어 있는 종을 보고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을 드는 이런 일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주인이 띠를 띠고 나아와 종들을 앉히고 수종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절에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때가 된 줄 아시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되신 예수님께서 종이 되어 제자들을 섬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차례가 되자 베드로는 “제가 주님의 발을 씻겨야지 어떻게 주님이 저의 발을 씻기느냐”고 하며 예수님으로 부터 발 씻김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놀라서 “그러면 발뿐만 아니라 온 몸을 씻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한 번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시면서 베드로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모습입니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펼쳐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13:12-17절을 보면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와 선생이 되어서 종과 제자들의 발을 씻겼듯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런 곳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어 기다리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때가 언제입니까? 오늘 본문 39-40절을 보면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도적이 언제 올지 예고하고 오지 않습니다. 만약 집 주인이 도적이 언제 올지 알았다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지켰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가옥은 대부분 흙벽돌로 지었기 때문에 도적은 벽을 파서 뚫고 집 안으로 침입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적이 언제 올지 모르듯이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합니다.

혼인 잔치 집에 참석한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는 종의 비유와 언제 올지 모르는 도적에 대한 이 두 비유는 역설적입니다. 그러나 이 두 비유의 교훈은 동일합니다.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인자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자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9:26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2:8-9절을 보면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앞에 선다고 합니다.

인자의 종말론적 재림은 누가복음에서 반복되는 주제가 아닙니다. 매우 특이하고 특별한 주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가 인자의 오심을 언급하는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깨어 있을 것을 강조하는 독특한 권고입니다. 누가는 우리가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깨어 있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자가 주님의 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인자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항상 깨어 있어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처럼 우리가 항상 깨어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맞이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듣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41절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고 청지기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42-48절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주인에게 그 집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청지기 비유는 주인이 없을 때 내릴 수 있는 종의 두 가지 선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종이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경우는, 성실하게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는 경우입니다. 42-44절을 다시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주인에게 그 집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떠나 있는 동안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그 집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은 복이 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그 종은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게 될 것입니다. 성실한 종은 주인의 더 높은 목표와 권능의 자리로 승진할 것입니다.

종이 선택할 수 있는 두 번째 경우는, 주인이 없는 동안 주인의 권리와 특권을 취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경우입니다. 45-46절을 다시 보면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고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경우는 순종의 선택으로 주인을 존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는 계산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 권세와 기회를 악용한 것입니다. 후자는 단순히 주인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친절과 은혜를 멸시하고 주인보다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단순히 어리석은 것 이상이며 악한 것입니다. 이 악한 종에게는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가 받을 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악한 종이 받게 되는 이 벌은 초대교회 기억 속에 충격적으로 남게 됩니다. 오늘 본문 46절에서 ‘엄히 때리고’라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 ‘디코토메세이’(dicotomhvsei)인데 이 단어는 ‘조각조각 내다’, ‘둘로 자르다’는 의미로 아주 강한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24:51절 외에 성경의 다른 곳에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24:50-51절을 보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 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이처럼 잔혹하게 몸을 절단하는 것을 묘사하는 내용은 사무엘이 길갈에서 아멜렉 사람인 아각을 ‘찍어 쪼개’(샤사프, #s'v;)는 사건이 유일합니다(삼상 15:33). 예수님께서 46절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형벌을 묘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론적인 장면으로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아각의 운명을 활용했을 것입니다. 46절의 종말론적 의미는 ‘날’이라는 용어로, 그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에게 주어질 형벌과 최후 운명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46). 이스라엘에서 이처럼 무서운 형벌은 하나님의 복수에 따른 결과에 해당합니다. 악한 종의 안전은 기초 없는 집과 같이(6:49), 한순간에 사라지는 덧없는 신기루와 같습니다(계 18:7-8). 이처럼 46절의 악한 종에게 주어지는 무서운 형벌은 인자가 다시 올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은혜로운 초대를 비웃고 하나님의 관용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종말론적인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소망하며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않는 자들이 받는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시고 진실한 청지기에게 주어지는 그 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47-48절을 보면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나뿐 종의 주제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에는 없습니다(마 24:43-51). 예수님께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많이 받은 자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청지기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나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청지기가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라고 여기며 사는 불신앙적인 것입니다. 청지기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주님의 제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양식들을 때를 따라 나눠줘야 하는 청지기들 입니다(마 13:52). 그러므로 선생된 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많이 맡은 자는 많은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많은 재물을 가진 자도 많은 책임이 있습니다. 많은 권세를 가진 자도 많은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하라고 맡겨 주신 것을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신을 위해 쓰고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자의 모습이 바로 책망 받을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며 진실하고 충성되게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유업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늦게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먹고 마시고 취하여 있다면 생각지 아니한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님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을 율에 처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청지기로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는 주님의 칭찬을 듣게 하시고, 그 축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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