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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3:1-9

2021년 누가복음 공부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 망하리라
말씀: 누가복음 13:1-9

지난 시간에 우리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라”고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누가복음 13장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누가복음의 중앙 단락인 9:51-18:3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시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13장 말씀은 이 중앙 단락의 중앙에 위치 해 있습니다. 13장은 여섯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교차대구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차대구 구조는 예루살렘으로 시작해서 예루살렘으로 마칩니다(4, 34). 예수님의 변모 사건 이후로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운명에서 초점이 되고 있는데, ‘선지자들을 죽이고’,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34)인 예루살렘의 속성은 어떤 종류의 ‘출애굽’ 곧 별세(9:31)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이어서 교차대구 구조는 누가 아브라함의 참 자녀인지를 밝히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아브라함의 참 자녀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차대구 구조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짧은 두 비유 곧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에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이 두 비유는 예루살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성장하고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예언합니다.

오늘 우리는 1-9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때 마침’이라는 말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예수님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하시고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한다고 말씀 하실 때를 말합니다. 그때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을 고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빌라도는 주후 26-36년까지 유대지역을 통치한 로마의 총독을 말합니다. 곧 사도신경에 나오는 그 빌라도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의 피를 제물에 섞었다는 말은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려고 할 때 빌라도가 이들을 죽여서 그 피를 제물에 섞여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물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아마 이 사건은 종교적 문제 곧 유월절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유월절 기간에 로마 총독과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그때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간에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 몇을 죽여 그 피를 제물에 섞었다는 것은 그들을 희생제물 취급을 했으며, 빌라도가 순례자들과 짐승의 제물을 똑같이 폄훼했음을 말해 줍니다. 빌라도는 갈릴리 사람들을 로마에 반역을 꾀하는 자들로 간주하여 그들을 죽이므로 독립운동을 잠재우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치고 계셨을 때 두어 사람이 와서 이런 끔찍한 사건을 고하였던 것입니다. 이 보고를 예수님과 함께 들은 청중들은 비통한 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일어난 일이었다면 더욱 그들은 비통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끔찍한 사건을 보고 받고서 그들에게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2-3절을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 몇이 그런 끔찍한 해를 받은 것이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의 고통은 이유 없이 주어짐을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원칙적으로는 그 사람의 고통은 이전의 죄와 범죄 탓으로 돌렸습니다. 곧 자신들의 죄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은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모든 죄인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한 경고로써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3).

오늘 본문 4-5절을 보면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을 보고 받은 후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열 여덟 사람이 죽은 사건을 언급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 의해 죽임 당한 사건과 동일한 교훈과 목적으로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진 사건을 언급합니다. 이 사건도 참혹한 사건으로 누가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로암 망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싼 옛 성벽을 묘사하면서 실로암 저수지 위의 한 지점에 벽이 동쪽 솔로몬의 우물을 향해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유대전쟁사 5. 145). 이 모서리 지점에 망대가 서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 망대를 건설 중이거나 아니면 수리 중에 무너져서 18명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처럼 황망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죽음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보다 죄가 더하냐고 하십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망대가 무너져 죽은 것이 예루살렘 거민들보다 죄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말씀하신 후에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십니다(5).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3절과 5절에서 반복해서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에게 회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고해서 회개로 이끌 목적으로 빌라도의 학살 사건과 실로암 망대의 붕괴 사건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절과 5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하라’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 ‘메타노에오’(metanoevw)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 9번 등장하는 데 모두다 9:51-18:35절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건을 기술하는 중앙 단락에만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개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은 경고등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문제는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는 행동으로 해결됩니다. 곧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 해결이 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에서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써 해결됩니다. 갈릴리 사람들이나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오늘날 우리나 간에 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과 죽음 후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하루하루 하나님의 심판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범죄 한 우리 인생의 실존입니다.

오늘 본문 6-9절을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인 사건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임을 당한 두 사건을 말씀하신 후에 계속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또다시 회개의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고서 그 열매를 구하고자 삼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수원지기에게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합니다.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고 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왜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었겠습니까? 포도나무의 열매가 시원찮아서 무화과를 심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무화과를 얻기 위해서 심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가 삼 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과수원에 과일나무를 심는 이유는 열매를 얻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맺히지 않거나 열매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 심은 과일나무들을 베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땅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가 삼 년이 지나도록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만 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찍어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로 비유합니다. 이사야 5:1-2절을 보면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곧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위해 노래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자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계속되는 이사야 5: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위하여 부족함 없이 다 해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좋은 포도를 맺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좋은 포도를 맺기는 커녕 들포도만 맺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들포도란 무엇입니까? 이사야 5:7절에 보면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원에서 공평의 열매를 맺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포학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에게 의로움의 열매를 맺기를 바랐는데 도리어 부르짖음의 열매가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9:10절을 보면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과 약속으로 대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행한 일이란 우상숭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포도나무도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대체작물인 무화과도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마저 찍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약의 선지자들은 심판의 상징으로 무화과나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34:4절을 보면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29:1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라고 했습니다. 또한 호세아 2:12절에도 보면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요엘 1:7절을 보면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미가서 7:1절을 보면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은 심판의 상징으로 무화과나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면서 열매 없음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6절에 보면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었는데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7절에 보면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고 합니다. 9절에도 보면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무화과나무 비유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앞의 두 사건을 통해서 심판을 말씀하신 주제를 그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와서 그 열매를 무화과나무에서 구했다는 사실은 이 나무가 이전에는 열매를 맺었던 적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열매를 얻지 못한 주인에게 과수원지기는 나무의 변호자로서 부탁합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다시 보면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과수원지기가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이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후에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때 가서도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때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8절 말씀에서 과수원지기가 주인에게 한 말 곧 ‘그대로 두소서’라고 했을 때 ‘두소서’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압히에미’(ajfivhmi)인데 교차대구 구조의 마지막 말인 35절의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에도 등장합니다. 여기서 ‘버린바 되리라’는 말이 ‘압히에미’(ajfivhmi)입니다. 누가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유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찍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무화과나무는 과수원지기의 요청으로 일 년의 유예기간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열매 맺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범죄 한 이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영광이 드러나고 자기 이름이 높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인간이 열심히 애를 써서 맺는 열매들은 하나님께서 드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땅만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오면서 무슨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습니까? 이 세상의 일에 가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있습니까? 이런 것이 없이 자기 자랑과 자기 의와 자기 영광과 자기 공적과 자기 업적을 내세우며, 시기와 질투와 같은 육체의 열매를 맺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다 찍혀져야 할 나무들입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유예기간을 신청하셔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일 년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밤에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서 도로 찾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접붙여져서 예수님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며 언약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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