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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4:25-35

2021년 누가복음 공부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누가복음 14:25-35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되도다”고 하는 자에게 큰 잔치 비유를 말씀해 주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허다한 무리들에게 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5-27절을 보면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서 나와서 가실 때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갑니다. 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나섰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병을 고쳐 주시는 기적을 보고 자신들도 고침 받고자 따라나섰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거침없이 비판하시는 말씀으로 인해 속이 시원하여 따라 나섰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따라 나섰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지만 그 목적은 사람들마다 다 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큰 잔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자기를 따르는 허다한 무리들을 돌이켜 보시며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26-27절을 다시 보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37-38절에도 보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이 말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마 10:1).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누가는 제자도의 책무를 회심한 자들이 아니라 무리와 독자들, 곧 예수님과 관계성을 맺을지 고민하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누가가 이 제자도를 무리들에게 말하는 것일까요? 누가가 제자도를 제자들이 아니라 무리들에게 말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필수적인 희생을 예수님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 심지어 예수님에게 접근해 있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13:26-27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주 앞에서 먹고 마시며 길거리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는 무리들에게 제자도를 말함으로써 예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다시 보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이 말씀을 좀더 덜 부담스럽게 기술합니다. 마태복음 10:37절에 보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제자도에 대해서 좀더 포괄적으로 언급합니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태는 부모와 아들과 딸을 제외한 다른 대상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누가가 26절에서 언급하는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모와 형제들과 친척들과 친구들이 그들이 미워하고 배반할 것을 경고하는 21:16-17절의 가르침을 떠나서는 이해 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21:16-17절을 보면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의 결속력은 인간의 모든 사회적 결속력 가운데 가장 강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속력조차도 깨질 수 있고, 미움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뒤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주는 결속력은 이 땅의 그 어떤 결속력보다 강합니다. 결코 깨질 수 없고,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자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지상의 가장 강력한 결속력과 예수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제자는 부서질 수 없는 예수님과의 결속력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26절에서 ‘미워하다’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미세오’(misevw)라는 말인데 이 말은 감정이나 악의로 증오하는 개념이 아니라 히브리적 의미에서 두 가지 중요한 요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거절 된 것을 의미합니다. 26절에서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신명기 33:9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장에게 요구한 것과 같습니다. 신명기 33:9절을 보면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했습니다. 부친과 모친을 보지 않고 형제들을 인정하지도, 자신의 자녀들을 인정하지도 않아야 했습니다. 곧 이스라엘의 제사장에게는 부모와 처자식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의 말씀이 우선이었습니다. 이처럼 26절의 요점은 선한 일들, 아버지와 어머니와 또 부모 공경과 같이 심지어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정하시는 대상마저도 예수님보다 더 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최고의 것과 경쟁하면 좋은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제자도로 표현되는 예수님과의 관계는 우리 자신의 삶을 포함해서 우리가 사랑할 의무가 있는 모든 것을 미워하기를 요구합니다. 자연적인 결속은 제자도와 대립합니다. 모든 자연적인 결속은 제자가 맞서 싸워야 할 제자의 원수입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완벽한 사랑은 제자를 얽어매는 모든 자연적인 결속을 깨뜨립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자도는 27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표현으로 반복됩니다. 27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26절에서 요구한 것과 별 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27절에서 요구하는 제자도 곧 ‘자기 십자가를 지는’것은 은유와 결합해서 28-32절의 두 비유 곧 망대 세우는 것과 전쟁의 비유에 설명된 것과 같이 꾸준함과 지속성의 주제를 위한 근거가 됩니다. 27절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매일의 시련을 통과해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을 암시합니다. 누가복음 9:23절에 보면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26-27절에서 제자도에 대해서 말한 후에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보충 설명을 합니다. 28-32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두 비유는 행동하기 이전에 필요한 사전 숙고를 강조합니다. 첫 번째 비유는 망대를 짓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29-30). 여기서 ‘망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퓌르고스’(profhteiva)인데 이 단어는 성채나 성벽의 망루를 가리킬 수 있으나 포도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대 또는 땅 주인이 세울 수 있는 높은 구조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서 오늘 본문과 13:4절에만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건축물의 유형보다 완료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망대를 세우려면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해야 합니다. 28절에서 ‘예산한다’는 말은 ‘계산한다’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인 ‘프세피제인’(yhfivzei)인데 이 단어는 조약돌로 계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방법은 고대 세계에서 사업 자산을 계산해서 기록하거나 투표를 위해 사용한 방식을 말합니다. 계산이나 투표는 독자들이 신중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들입니다. 망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 비용을 먼저 신중히 계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용이 부족해서 중도에 공사를 중지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게 됩니다.

두 번째 비유는 전쟁을 준비하는 왕의 비유입니다(31-32). 이 비유도 청중에게 사전 숙고를 강조합니다. 앞의 비유 곧 망대를 짓는 비유와 비교해서 잘못된 판단의 결과는 더욱 참혹할 것입니다. 전쟁에서의 실패는 단순히 조롱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과 패망에 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쟁에서 패배는 전쟁을 하다가 죽든지, 아니면 승리한 적장의 손에 의해 처형을 당해 죽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 나아가는 왕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자신이 가진 병력으로 적군을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있는지 먼저 계산을 해야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적이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모하게 전쟁을 했다가는 죽임을 당하고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비유 즉 망대 짓는 비유와 전쟁을 준비하는 왕의 비유의 강조점은 먼저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망대를 짓든지, 전쟁을 하든지 그 결과를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시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여 비웃음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그 제자의 길이 어떤 길인지, 어떤 희생과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실패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목숨마저 미워해야만 따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누가복음 9:51절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한이 차가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굳게 결심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려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중앙단락 곧 9:51-18:35절까지 말씀은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이루어진 일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길입니다. 누가복음 18:31-34절을 보면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였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굳게 결심하시고 가시는 길은 예루살렘이며, 그 곳에서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왕으로 등극하는 줄 알고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시기하고 다투고 경쟁을 하면서 따라 나선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러하다면 다른 허다한 무리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이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의 길도 당연히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것을 알고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 33절을 보면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능히 자신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의 모든 소유를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2:33). 이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9:3; 10:4).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소유를 다 버릴 수 있습니까? 오직 우리 주님만 의존하여 살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9:16-30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으니 무엇이 부족하냐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서 묻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들어갑니까?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26).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제자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기 소유를 생명처럼 붙들고 삽니까? 이런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사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사람도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삼중 부르심, 즉 가족과 재산을 버리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은 바로 새로운 정체성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정체성은 혈연, 인종, 사회적 요인에 기초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희생적인 제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루터는 ‘내주는 강한 성이요’에서 ‘재물과 친척을 보내라. 죽을 이 목숨도 보내라’고 썼습니다(참조. 찬송가 384). 예수님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스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줍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당신의 모든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요구하는 제자도는 가공의 이야기 혹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제자의 삶의 진정한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은 어떤 경우에는 가족도 버려야 합니다(26). 어떤 경우에는 가족과 함께 해야 합니다(행 16:33; 고전 7:12; 골 3:18-21). 어떤 경우에는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27).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짐을 져야 합니다(갈 6:2). 모든 것을 버려야 하지만(33; 18:29), 모든 것을 받아야 합니다(12:22-32; 14:1; 18:30).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하며(10:38; 22:10-12; 마 25:35-36), 주인의 소유를 책임져야 합니다(12:44). 주께로 와서 주를 섬겨야 하지만(26), 주께서도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을 섬기십니다(12:36-37).

제자도는 주는 것과 받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모든 사람이 항상 동일한 모습의 제자도로 부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의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모든 제자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예수님에게로 부름 받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도는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유지하는 대신 예수님을 버리게 됩니다.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그 의미를 바르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소금과 같이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34-35절을 보면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소금에 대한 어록으로 제자도의 가르침을 마칩니다. 소금의 어록은 비슷한 모습으로 마태복음 5:13절과 마가복음 9:50절에도 등장합니다.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소금을 제자도의 부르심에 적용합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부패하지 않도록 음식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만듭니다. 소금이 이처럼 좋은 것이지만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소금처럼 기능을 해야 합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심지어 그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시하는 신자들, 살아 있는 순교자들로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신자들, 자신의 소유를 버리는 신자들은 맛을 내는 소금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세상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소금 맛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따른다고 주장한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쓸모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소금이 맛을 잃으면 땅에도, 거름에도 쓸모없어 내어 버리듯이 하나님의 버린바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34-35).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의 제자의 길이 어떤 길인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세상의 소금과 같이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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