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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26-38
강설날짜 2019-11-24

2019년 누가복음 공부

예수님의 수태 고지

말씀:누가복음 1:26-38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를 살펴봤습니다(5-25).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수태 고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6-30절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세례 요한의 출생을 예고한지 여섯째 달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와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는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놀라면서 “이런 인사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마리아에게 이르기를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28절에서 마리아를 은혜를 받은(kecaritwmevnh, 께카리또메네)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를 받은 자’라는 말은 수동태 완료 분사입니다. 이 말은 은혜를 받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30절에서는 “은혜를 입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원어로 보면 단순 과거형으로 이미 은혜를 받은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천사는 ‘앞으로 은혜를 받을 테냐?’라고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은혜를 받은 자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입었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eu|re" cavrin’(흐레스 카린)인데 이 말을 직역하면 ‘은혜를 발견하다’입니다. 이 말은 셈어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30절에서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했을 때 ‘은혜’라는 말이 28절에 천사가 처음 마리아에게 임했을 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라고 했을 때 ‘은혜’라는 말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성품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이 처녀가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커다란 경륜 속에서 맡게될 높은 직분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30)고 할 때 쓰인 전치사는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할 때 쓰인 전치사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할 때 쓰인 전치사는 ‘메타’(metav)입니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할 때 쓰인 전치사는 ‘파라’(parav)입니다. 이 ‘파라’(parav)라는 전치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은혜를 얻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을 입었는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힘쓰는 여인이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그릇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운 선택을 받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31-33절을 보면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은혜의 내용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은혜로운 소식입니까? 당시 마리아는 정혼한 처녀였습니다. 27절에 보면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처녀’는 원어로 보면 ‘parqevno"(파르테노스)’인데 이 단어는 아직 동정녀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지만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곧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였습니다. 당시 정혼은 결혼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정혼한 처녀가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혼한 처녀인 마리아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소식은 마리아나 정혼 자 요셉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이 아니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18-23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요셉이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공개해 버리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기 때문에 조용히 정혼을 없던 것으로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정혼한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 천사 가브리엘은 정혼한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왜 은혜로운 소식이라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31-33절을 다시 보면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을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는 여호수아(Joshua)라는 히브리식 이름의 그리스어 형입니다. 예수 곧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당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이 이름을 가졌던 이는 모세의 후계자요, 그의 오른 팔과 같은 동역자였던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와 호세아의 합성어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정혼한 처녀 마리아가 잉태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한 것을 볼 때 그가 누구인지 그 이름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탄생하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마리아는 구원자를 잉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이사야 7:14절의 성취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마태복음 1:22-23절에서 본 것처럼 마태도 예수님의 탄생을 이사야 7:14절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의 성취로 말했습니다. 이사야 7: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4대에 걸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웃시야가 즉위하던 해인 주전 740년경부터 그가 죽던 해인 주전 681년까지 사역했습니다. 그런 그는 요담의 아들이며, 웃시야의 손자인 유다 왕 아하스의 통치 기간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유다를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의 공격을 눈 앞에 두고 있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예루살렘 성은 안전히 보호될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또한 이 전쟁을 통해서 오히려 유다를 침공한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왕은 죽임을 당할 것임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유다가 다윗과 맺은 언약 가운데 굳건히 서 있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표징로 임마누엘 징조와 강림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예언은 다윗 왕국의 아하스와 온 다윗의 집이 주께서 메시아의 약속에 관한 그의 계획을 실현하시는 일을 보증하고 계신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던 하나의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서 있는 다윗 왕조를 무너뜨림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는 일을 하려는 두 원수 베가와 르신의 죽음은 메시아의 다윗 왕조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명백한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이 다윗 왕국과 그 온 집을 위해 징조로 보여주실 예언 곧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인 함께 하시리라는 언약을 신실히 이루실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징조는 장차 먼 훗날에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탄생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징조는 지금 가까운 시기에 있어서는 아하스 왕에게 ‘임마누엘 징조’로 주어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유다를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으로 나타날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임마누엘 징조는 하나님의 강림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며, 이는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은 예수라 불릴 것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나실 예수님이 어떤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까? 32-33절에 보면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날 예수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곧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날 예수님에게 그 조상 다윗의 왕위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조상 다윗’(Daui;d tou' patro;" aujtou, 다비드 토우 파텔로스 아우토우)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당시 메시아의 칭호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는 그의 아들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7:12-16절을 보면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려고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에 보면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왕조는 세상적으로 보면 이미 끊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나서는 다윗의 왕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은 끊어지지 않고 요셉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고 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질 왕국은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왕국인 것입니다. 곧 이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아니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무엘하 22:5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또한 시편 18:5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무엘하 7:12-16절에서 약속하신 다윗의 몸에서 날 자를 통해 세워질 그 나라와 영원히 견고케 할 그 왕권은 육적인 다윗의 후손을 통해 세워질 세상적인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그 나라와 그 왕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승천하심으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등극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성령을 보내어 주십니다. 지금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보면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하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대한 천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5-37절을 보면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덮다’(에피스키아조, ejpiskiavzw)라는 단어는 엄청난 말입니다. 이 단어는 ‘어둠 속에서 너를 덮으리라’는 뜻인데 이것은 빛이 넘침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지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질문에 대한 천사 가브리엘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에 대해 말하면서 천사 가브리엘은 그 예로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래 엘리사벳이 수태하지 못하는 여인임을 마리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태하지 못하던 엘리세벳이 늙어서 아들을 배었다는 것입니다.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합니다(35).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는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다윗의 자손’이 메시아의 칭호로 불리듯이 ‘하나님의 아들’도 메시아의 칭호입니다.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메시아의 칭호를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나실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독자들에게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문맥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단순한 메시아의 칭호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를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과 관련시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단지 ‘다윗의 자손’으로서 인간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신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곧 영적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5b절에 보면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했습니다.

 

37절을 다시 보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이루시는 일에 전능하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졌고 그 약속들을 이제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마리아가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복되다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7:1-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자 그 백부장은 말씀만 하라고 했습니다. 말씀만 해도 낫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자리는 자기 자신이 죽어야 되는 자리입니다. 자신이 버림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자기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마리아를 도구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는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38절을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계집종이오니’라는 이 고백이 바로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입은 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순종의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성경의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탄생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자연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의 계집종이 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마리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충만케 하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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