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교회중심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의 중요성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개혁신학과 관련된 글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그리고 교회 중심이라는 표어이다. 이 세 가지는 매우 중요한 것을 간명하게 잘 간추려서 강조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개혁신학을 간추리고 또 간추리면 아마 이런 말들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축약에는 늘 제한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중에서 요즈음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과연 우리들의 삶이 교회 중심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전에 필자가 어릴 때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 말이 예배당 중심, 또는 좁은 의미의 종교 생활 중심으로 이해된 때가 있었다. 그 때 이런 좁은 의미의 정식화에 반발하는 것이 일반화 되다가 언젠가부터 우리들 사이에 참으로 교회 중심적인 삶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참으로 교회 중심적인 삶이란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교회의 사명에 충실한 교회의 지체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삶이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점점 적어져 가는 모습이 우리를 아쉽게 한다.
이런 교회의 교회된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려면 교회를 통해 풍성한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일을 제일의 우선적인 과제로 삼는 것이 개혁 교회의 특성이었다.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가장 강조해 온 것이다. 이런 은혜받음 없이 우리는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의 침잠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의 가르침을 받은 자답게 하나님 나라의 원칙에 서서 바르게 판단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성령님께 의존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여 나가는 것이 참으로 교회를 이 세상에 현존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진행되어져 가는 그곳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점이 매우 부족했었고, 지금도 이점에 있어서 별로 유력한 모습을 나타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같은 지체된 형제자매들을 돌아보는데서 교회의 교회됨이 나타난다. 이 일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회집 가운데서, 그리고 각 가정에서의 자연스러운 교제 가운데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성장해 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돌아보고 같이 사귀어 나가는 일은 우리의 큰 과제이며, 이는 또한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교제를 통해 위로와 기쁨을 나누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같은 교회에 참석하지 아니하는 이웃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와 협력도 교회 중심의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나타난다. 이 점이 배제될 때 우리는 개교회 주의나 심지어 배타주의적 문제점(도나티스트적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회의 가르침에 유의하면서 항상 같은 하나님을 섬겨 나가는 바른 교회들과의 유대를 존중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우리의 복음에 합당한 삶에 근거해서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매우 창조적인 사역이 교회 중심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 나타나게 된다. 다른 이들을 교회의 교제 가운데로 오게 하여, 우리와 같이 주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게 하는 일은 우리의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이런 몇 가지 근거에 비추어 볼 때 과연 교회 중심의 삶인지가, 아니면 아직까지도 나 중심, 또는 한국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가정 중심의 삶인지를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여 온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 중심의 삶이 우리들에게서 확연히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개혁신학과 관련된 글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그리고 교회 중심이라는 표어이다. 이 세 가지는 매우 중요한 것을 간명하게 잘 간추려서 강조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개혁신학을 간추리고 또 간추리면 아마 이런 말들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축약에는 늘 제한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중에서 요즈음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과연 우리들의 삶이 교회 중심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전에 필자가 어릴 때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 말이 예배당 중심, 또는 좁은 의미의 종교 생활 중심으로 이해된 때가 있었다. 그 때 이런 좁은 의미의 정식화에 반발하는 것이 일반화 되다가 언젠가부터 우리들 사이에 참으로 교회 중심적인 삶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참으로 교회 중심적인 삶이란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교회의 사명에 충실한 교회의 지체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삶이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점점 적어져 가는 모습이 우리를 아쉽게 한다.
이런 교회의 교회된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려면 교회를 통해 풍성한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일을 제일의 우선적인 과제로 삼는 것이 개혁 교회의 특성이었다.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가장 강조해 온 것이다. 이런 은혜받음 없이 우리는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의 침잠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의 가르침을 받은 자답게 하나님 나라의 원칙에 서서 바르게 판단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성령님께 의존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여 나가는 것이 참으로 교회를 이 세상에 현존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진행되어져 가는 그곳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점이 매우 부족했었고, 지금도 이점에 있어서 별로 유력한 모습을 나타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같은 지체된 형제자매들을 돌아보는데서 교회의 교회됨이 나타난다. 이 일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회집 가운데서, 그리고 각 가정에서의 자연스러운 교제 가운데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성장해 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돌아보고 같이 사귀어 나가는 일은 우리의 큰 과제이며, 이는 또한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교제를 통해 위로와 기쁨을 나누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같은 교회에 참석하지 아니하는 이웃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와 협력도 교회 중심의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나타난다. 이 점이 배제될 때 우리는 개교회 주의나 심지어 배타주의적 문제점(도나티스트적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회의 가르침에 유의하면서 항상 같은 하나님을 섬겨 나가는 바른 교회들과의 유대를 존중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우리의 복음에 합당한 삶에 근거해서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매우 창조적인 사역이 교회 중심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 나타나게 된다. 다른 이들을 교회의 교제 가운데로 오게 하여, 우리와 같이 주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게 하는 일은 우리의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이런 몇 가지 근거에 비추어 볼 때 과연 교회 중심의 삶인지가, 아니면 아직까지도 나 중심, 또는 한국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가정 중심의 삶인지를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여 온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 중심의 삶이 우리들에게서 확연히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등업요청은 등업게시판을 활용해주세요. [4] | 최고관리자 | 2021.11.10 | 846 |
361 | [re] 켄터키 할아버지 이야기.... | 박정일 | 2003.09.20 | 2474 |
360 | 하나님 영광의 증시를 위한 직업 | 손재호 | 2003.10.17 | 2541 |
359 | [책]'꺼져 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 -리챠드 십스 [1] | 최상범 | 2003.11.26 | 2874 |
358 | .....좋은 플래쉬~ | 최상범 | 2003.12.29 | 4201 |
357 |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 김동진 | 2007.09.30 | 2898 |
356 | 만화기독교강요를 읽고 | 김동진 | 2008.01.18 | 2855 |
355 | 사이렌 | 김동진 | 2008.10.14 | 3207 |
354 | 실루엣 | 김동진 | 2008.10.20 | 2735 |
353 | 청바지 | 김동진 | 2008.10.21 | 2109 |
352 | 미국의 수도 | 김동진 | 2008.10.21 | 3050 |
351 | 가시고기 | 김동진 | 2008.11.29 | 2325 |
350 | 배추와 대화를 나누며 | 김동진 | 2008.12.08 | 2734 |
349 | 현대교회와 교리 설교의 회복 | 손재호 | 2008.12.11 | 2404 |
348 |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기독교 강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손재호 | 2009.04.17 | 1921 |
347 | 예배에 참석하는 자녀들 | 손재호 | 2009.04.20 | 1800 |
346 | 장로교회의 예배 이해와 장로교 예배 모범의 전통 | 손재호 | 2009.04.26 | 4363 |
345 | 공예배의 회복 | 손재호 | 2009.04.28 | 1646 |
344 | 믿고 사랑하고.. [3] | 송인호 | 2011.03.25 | 5191 |
» | 교회중심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의 중요성 | 손재호 | 2011.06.03 | 1648 |
342 | 교회에서의 여성 사역의 문제에 대한 한 고찰 | 손재호 | 2011.10.19 | 1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