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개혁교회 교육에 관한 연구
박준태(실로암 교회 장로)
본 글은 이광호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실로암 교회에서 종교개혁기념주간에 행해진 세미나 중 박준태 전도사님께서 발제한 강의의 강의안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제목이 개혁교회 교육에 대한 연구이다. 이 주제를 더 잘 이해하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개혁교회의 교육을 알기 전에 우리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의 기원을 알고 개혁교회 교육을 살피는 것이 우리를 맑은 물에 비추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주일학교 교육은 선교사들에 의해 이식된 미국주일학교 교육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미국주일학교에서 시작하여 이것이 한국교회에 어떻게 이식되었는지, 그리고 이식되는 과정에서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미국주일학교와 다른 길을 걸은 개혁교회의 교육과 우리의 과제를 알아봄으로 한국적 상황에서 개혁교회 교육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도움을 얻고자 한다.
I. 미국주일학교
한국교회의 교육은 주일학교와 여름성경학고, 그리고 중고등부 수련회가 담당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주일학교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주일학교는 말 그대로 주일날 이루어지는 학교를 말한다. 이러한 주일학교의 시작은 미국주일학교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1세기 교회교육에서 지적된 주일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미국주일학교 교육이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한국교회에 이식되었다.
미국주일학교 교육은 그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 기원이 영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첫 주일학교는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으며 교회 밖의 기관으로 시작되었다. 1780년 영국 글로우세스터(Gloucester)에서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에 의해서 조직되었다. 레이크스가 ‘일요일 학교’를 시작한 18세기 말은 18세기 중엽부터 일어난 급격한 산업혁명의 결과로 많은 사회문제를 드러낸 시대였다. 사회문제는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났으며, 6세 정도의 아동들이 열악한 환경의 생산공장에서 노동해야만 했으며, 청소년의 비행과 범죄가 격증하여 어린이를 위해하는 환경상황이 ‘일요일 학교’를 시작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공부와 읽기, 쓰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주일학교 교육이 18세기 후반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과 연합되었다. 그리하여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교회와는 독립된 기관으로서 평신도에 의해 운영되며, 어린이들을 복음화시키는 주요 기관이라는 주일학교의 본질적 특성이 이미 형성하게 되었다.
50년이 지나지 않아, 즉 1780-1830년 사이에 주일학교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19세기 초에 미국에 들어오게 된다. 미국에서의 초기 주일학교는 영국의 모델을 따라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성격과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1860년에서 1900년 이후 주일학교는 교회 속에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때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이 밀려나면서 학교가 담당하고 있던 종교교육을 교회가 그 책임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때 교회는 교회의 성경과 신조에 의해 해석된 교회의 교육의 사명에 의하기보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주일학교의 본질과 사명에 근거하여 구성된 교육과정을 교회에 적용하게 된다. 복음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주일학교를, 어린이들을 복음화하거나 신앙의 초보를 가르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본질과 사명에 일치하는 충분한 교육적 사역을 다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시기에, 주일학교를 통해 교회 밖 기관이었던 이전의 상태의 잔존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수준의 교회 교육을 하게 된다.
미국 초기(식민지 시대) 교육은 그 대부분이 개혁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공교육의 씨앗은 개혁자들에 의해서 뿌려졌다. 성경의 권위,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와 칼빈의 5대 교리와 같은 위대한 교휸을 가르쳤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에게 성경과 요리문답을 가르쳤다. 그러나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이 밀려나며서 학교가 담당하고 있던 기독교 교육의 책임을 교회가 맡아야 한느 상황에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공교육의 세속화와 교회 교육의정체성과 질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공교육의 세속화로 공교육에서는 종교적 중립, 즉 반기독교적인 색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공교육 안에 기독교인이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세속적 입장이 변경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세속화로 주일학교 교육은 공교육이 담당하고 있던 교회의 역사와 신조 등을 수용하지 못하고 단지 전도하는 기관으로 교회 밖의 기관의 정체성을 그대로 갖고 주일학교 교육이 이루어졌다.
II. 한국주일학교
미국주일학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교회는 미국 초기 교육을 이식받은 것이 아니라, 약화되고 세속화된 교육을 이식받았다. 신조를 통한 신앙고백의 교육은 사라지고 전도하는 기관으로서의 주일학교 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 미국주일학교 교육을 이식받은 것이다.
그리고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미션 스쿨’은 학교를 전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교과목을 성경의 교훈이나 신앙고백과 통합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 달리 말하면, 언약의 자녀에 대한 교육은 차츰 뒷전으로 밀려났고, 가르치는 내용에서 기독교적 독특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선교 100주년을 자랑하는 한국교회는 이제 우리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자녀에 대한 교육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교회 교육의 역사를 통해서 그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다시 성경과 신조에 일치하는 교육과정을 따라 언약의 자녀들의 교육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III. 개혁교회의 자녀교육
개혁교회의 자녀교육은 획일적이고 단순하지 않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상호 관계 속에서 자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주신 선물임, 언약의 자녀이며,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교회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세상 속에서 개혁교회의 성도로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1. 교육의 근거
1)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
최근에 새롭게 대두되는 것 중에 하나가 자녀신학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교회 교육의 부재를 지적하면서 교회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염려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다. 신명기 6-11장은 모세의 설교로 시내산 언약을 갱신한 모압 언약 체결예식 가운데 5장에서 주요 법인 십계명과 12-26장의 세부법 사이에 위치하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6-11장까지의 긴 설교의 내용의 처음 시작 부분이다. 모세의 설교의 서두에 자여 교육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그 일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모세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
에베소서 6:4에서도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는 이 대표적인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따라서 언약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 우리 마음의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임을 기억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2) 세례시의 서약에 근거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행하고 있으며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리고 유아세례 시 부모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들을 양육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약을 기억하는 부모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약속의 이행을 위해서 부모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개혁교회 신자들은 유아세례 시 서약을 평생 기억하면서 유아세례애서 성찬상까지의 교육적 사명과 책임을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 :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을 따라서 그대들의 힘을 다하여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이 자녀를 교육하고 교육받게 하며, 또한 친히 사람의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힘쓰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니까?
답 : 예
3) 교회법에 근거해서
개혁교회는 아이들을 향한 기독교 교육과 관련해서 이것을 교회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 규칙은 개혁 해방파 교회에서 사용하는 교회법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치리회는 부모들이 세례 때에 서약한 바와 같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자녀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교육을 받게 하도록 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은 유아세례 시의 부모의 서약이 하나님과 교회 앞에 행한 것이므로 단지 구호가 아니라 실천적 순종의 서약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를 지도하고 감독할 의무가 있음을 교회법에 명시하고 있다.
2. 개혁교회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의 상호 역할
개혁교회 부모는 유아세례 시의 서약을 기억하며 자녀들을 위한 가정과 교회와 학교에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혁교회의 특징은 주중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일에는 예배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가 담당하고 있는 교육의 역할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중심이 주일의 예배에 맞춰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주일은 예배와 교제가 중심이며, 자녀들을 위한 성경과 교리 공부반이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1) 교회의 역할
개혁교회의 자녀교육은 유아세례에서부터 성찬상까지이다. 이는 언약의 자녀들이 유아세례를 받고 스스로 공적으로 신앙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고백할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가정과 학교와 협력하여 이 일을 해나간다.
초등학교 단계에 있는 자녀들은 기독교 학교에서 교회사와 성경을 배우기 때문에 한국식의 주일학교가 없으며,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게 된다. 중, 고등학생이 되면 교리반에 편성되어 12세부터 시작하여 18세 혹은 19세까지 적어도 7년 동안 매주 한 시간씩 목사님으로부터 직접 교리 교육을 받게 된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또래끼리 성경연구반을 만들어 성경 말씀을 연구한다. 이는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성경연구 모임이다. 여기에는 따로 지도 교사가 있지 않으나, 일 년에 몇 차례씩 교사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연령이 높아갈수록 벨직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경을 취급하며, 교회사, 교회정치, 예배학도 다루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자기가 속한 개혁교회는 무엇을 믿고 있음을 알게 되고, 역사 속에서의 자기 교회의 위상을 바로 알게 된다. 특별히 거의 모든 청소년들은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29문답을 거의 외우고 있게 된다.
2) 학교의 역할
a) 학교의 역사
네덜란드의 경우는 1798년 이전까지는 공교육이 기독교 교리를 담당하고 있었으나 1798년의 헌법으로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면서 공교육은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갔다. 그런 가운데 1848년의 헌법 개정과 1857년의 학교법 개정으로 사립학교 곧 기독교 학교가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 설립 및 유지비용은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해방파 교회는 1834년의 ‘분리’와 1886년의 ‘애통’의 노선을 따라서 ‘교회-가정-학교’의 삼각형을 손상하지 아니하고 활력있게 유지되도록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개혁교회 신자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많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1917년에 네델란드의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처럼 동등하게 정부로부터 재정보조를 받도록 교육법이 개정된다. 그러나 지금도 작은 사립학교의 재정은 부모들이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b) 학교에 대한 부모들의 자세
개혁교회는 부모가 자녀교육의 주체가 되어 있으며 그들은 자녀교육이 종교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에 의거한 것이다. “마땅히 행할 길”은 성경에 따르면 언약의 길이다.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그러므로 구약과 같은 맥락에서 신약의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종교적으로 교육하도록 권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는 말씀을 따라 개혁교회는 학교교육을 종교교육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개혁교회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세상에 맡기지 않고 기독교 학교를 세워서 교육한다.
또한 정부와 학교의 분리로 인하여 공립학교의 세속화로 인본주의적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부모가 기독교 학교를 세워 교육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부모가 자녀교육의 책임자로 해야 할 의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교회 부모는 유년기의 기독교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자녀의 교육을 불신자들에게 맡기는 것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c) 학교 교과 내용
개혁교회에서 세운 기독교 학교의 초등학교 시간표에는 일반적인 교과목도 있지만 교사가 매일 성경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주간의 찬송이라 하여 이 시간을 통해 매주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편이나 다른 노래의 한 절을 배운다. 학교 선생은 주간에 배운 시편을 목사에게 이야기하고 목사는 바로 그 시편을 예배 시간에 함께 부르도록 한다. 그리고 초등 3학년부터 ‘성경에 기록된 역사’라는 과목이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창조, 이스라엘 백성과 조상, 왕,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배운다. 또한 비단 이런 특정 과목에서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관계에서 신앙 교육과 각종 행사가 실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설교를 더 잘 이해하고 예배에도 더 잘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학교를 통해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우기 때무에 우리처럼 주일학교가 따로 필요없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에서는 더 심화된 교회 역사와 교회사를 배운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과 교회사를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개혁교회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개혁교회의 성도인 것에 대한 자부심 또한 크다. 그리고 한 번 개혁교회의 성도가 되면 개혁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3) 가정의 역할
개혁교회의 가정은 자녀 교육의 주체로 모든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개혁교회의 가정은 교회와 학교 교육의 연속선상에 있다. 주일 공예배 후 자녀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자녀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면서 자녀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설교가 의미하는 것을 설명한다. 또 그들은 설교가 자녀들의 생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이렇게 주일은 부모들에게 자녀의 기독교 교육을 위해 특히 바쁜 날이다. 또한 부모들은 스스로의 태도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가 설교 시간에 졸거나 오전 예배만 참석하고 오후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주의한다. 이는 부모의 본이 없이 말로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삶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함으로 개혁교회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설교의 대부분의 이해하지 못하지만 교회로 나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어렸을 때부터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함을 그들에게 행동으로 가르친다.
IV. 우리의 과제
개혁자 중에 루터와 칼빈이 비텐베르크와 제나바에서 각각 요리문답을 작성하여 신앙교육한 것을 알고 있다. 그 정신을 이어 받은 개혁교회 교육을 우리에게 적용함에 있어서 우리의 과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신앙 교육과 문화
교육을 한다는 것은 밭을 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철에 묵은 땅을 갈아엎어서 다시 거기에 씨를 뿌리는 것같이, 세속적인 가치와 욕망들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어서 거기에 성경과 신앙고백의 씨를 뿌리는 것과 흡사 비슷할 것이다. 판 더 베이크는 “기독인의 사명은 문화에 적응하거나 기독교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문화의 정체 곧 반 기독교적 문화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대에 풍미하는 소비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 같은 문화 사조가 반 기독교적 정체를 가진 것을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갈아엎어야 할 반기독교적인 소비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는 우리의 유교와 결합하여 자녀 교육에 깊숙이 침투하여 교회의 자녀를 사유화하려는 경향으로 나아가며,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풍조를 낳고 있다. 이는 우리의 자녀에 대해서 교회아(敎會我)로서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직분을 저버리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은 터를 닦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닦아야 할 터는 말씀과 신앙고백이며 버려야 할 터는 세속적 욕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들은 우리가 버려야 할 터를 열심히 닦으면서 교육을 통해서 사회의 상층에 진출할 수 있다는 세속적인 가치를 따라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2. 신앙 교육과 가정
한국교회는 자녀교육을 세상의 학교 혹은 학원에 맡기고 있다. 학교에서는 재능과 관련된 교육을 받기를 원하며 반면에 가정과 교회는 종교교육을 제공함으로 자녀의 마음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순진한 기독교 부모들의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학교는 우리의 생각대로 순진하지 않다. 학교에서의 재능교육은 언제나 세속적인 가치와 철학을 함께 동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교 교육을 단순히 재능교육으로 접근하는 것은 학교 교육의 위험성에 대해서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처사이다.
학교가 갖고 있는 교육철학은 이미 우리의 자녀들의 사상을 성경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인간의 삶의 불완전성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숙달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가르치며,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므로 적당한 환경과 현명한 지도 아래 있을 때, 자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발달해 나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되지 않았으므로 자신 속에는 최대의 윤리적 이상에 이를 수 있는 자연적인 추진력이 있음과 악을 극복하고 도덕적 완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 있음을 가르친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천사와 악마, 죄와 속죄, 천국과 지옥 같은 사상의 가르침을 금한다.
순진한 부모들의 생각과 현실은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의 교육 주체이기보다는 교육에 필요한 재정적 후원자 정도 역할로 밀려나 있고 자녀 교육의 주체는 세속적인 사상의 지배 아래 있는 학교가 차지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일에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에 있어서도 부모는 자녀의 교육의 책임자가 아니다. 이미 그 책임을 주일학교 교사에게 위임한 상태이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녀 교육의 책임 있는 교육자로서 누구를 지목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이는 부모가 책임있는 교육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 교육의 주체는 학교나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가 아닌 부모이다.
3. 신앙교육과 학교
한국의 기독교 학교는 대부분이 공교육에 성경과 기도를 더한 학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학교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알고 학생들은 교사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사로 인정하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다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같은 마음일 때 모든 수업이 달라진다. 이러한 기독교 학교를 지금 당장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과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루터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지적하였으며, 칼빈은 제네바 학당을 세워서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서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를 양성하는 일을 하였다. 한국 개혁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칠 목사와 더불어 우리의 자녀들을 교육할 학교의 시대적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어떻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칼빈이 1537년에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학교를 보게 된다. 그리고 1559년에 제네바 학당을 세운다. 무려 22년이라는 기간이 흐른 후에야 학교가 세워진다.
우리의 목표는 당장 학교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있다. 칼빈이 제네바 학당을 세우는데 무려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은 결국 교회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학교라는 건물이나 교사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교회를 통해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따라 작은 걸음이라도 한 걸음씩 걸을 때 우리의 걸음을 주께서 인도하실 것이며, 이 작은 걸음이 나중에 밑거름이 되어 교회의 역사와 함께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더 나은 과업이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V. 마치는 말
우리는 지금 큰 말을 하기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깨달은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미 강조하고 있는 일을 아직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예배 때 들은 마씀을 함께 나누는 일과 주일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한 확인과 과제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도와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말씀 안에서 바르게 자라기를 소망한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작은 것의 중요함을 인식할 때 이 작은 걸음을 주님께서 사용해 주시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기독교 학교의 모두를 갖출 수는 없지만 우리가 교회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과목의 정비와 함께 이루어질 수업시간의 시수를 늘려 나가는 일로부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교회의 몇몇 사람에 의해서 행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모의 협조와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교회 전체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교육의 주체는 부모이다. 우리 자녀들이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인격이 성숙하기 위해서 먼저 지각하지 않으며, 또한 결석하지 않도록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 내용을 가정에서 함께 나누기 위해서 부모 중에 한 사람은 꼭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주체가 부모인 것은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명심하고 여러 말로 명령하고 지시하기보다는 부모의 모범적인 실천이 그 책임의 한 부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언약의 자녀로 자랄 수 있도록 부모된 우리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곧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부여된 권리이기도 하다.
# 한국개혁교회의 사례
성은교회(대전)
독립개신교회에 속한 대전 성은교회는 1999.12.27 ~ 2000.1.31 겨울학교를 처음 시작하여 2000.3.11 ~ 7.15 봄학교, 2000.7.19 ~ 8.30 여름학교, 2000.9.9 ~ 12.16 가을학교로 일년 사절에 맞추어 지금까지 계절학교를 운영해 오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 때는 일주일에 3일씩(월, 수, 금) 모임을 갖고 봄학교와 가을학교는 격주로 토요일을 이용하여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새싹 유치원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중심이 되어서 운영되고 있다.
자녀교육의 근거
성은교회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그대들이 힘을 다하여 이 자녀를 이러한 교훈으로 교육하고 교육을 받게 하며”라는 질문과 서약에 따라서, 개혁신앙으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부모가 유아세례 때에 서약한 내용 가운데 일부라 생각하여 계절학교로 모여서라도 자녀들에게 개혁신앙으로 교육을 받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회협회의 목적
유아세례 때에 서약한 정신에 따라서 규약에서도 교육협회의 목적이 “성은교회의 언약의 자녀들이 성경에 일치하는 교육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학교를 설립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이 목적을 위하여 교회의 영적인 감독을 받는다”(2조 1항)고 또한 밝히고 있다.
교육목표
교육의 목표는 교회의 언약의 자녀를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고 여기에 있는 그리스도의 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약과 신약의 교훈”으로 가르치는 것이며, 이러한 목표에 따라 우리는 ‘언약의 자녀’를 ‘교회의 자녀’로 키워서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인 그들이 자기의 입으로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예표하는 성찬에 참여하기를 소망하며, 그 목표를 위해 계절학교로 모임을 밝히고 있다.
성은 계절학교의 자세
성은 계절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첫째, 유교적인 토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교회의 행보를 생각하면서, 즉 이천년의 교회의 역사와 그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해명되었는가를 잘 알고 이 시대의 움직임을 신령하게 파악할 재목들을 주께서 일으켜 주시기를 바라고 나아간다. 둘째, 우리가 은사를 개인의 ‘자질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의 관점’에서 정당하게 이해하고 주님께 충성을 다할 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직분을 통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만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셋째, 성은 계절학교는 직업학교도 영재학교도 아니며, 언약의 자녀가 잘 양육을 받고 독립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가입하기를 목표로 한다. 성은 계절학교가 속한 교회는 그 이름이 ‘독립개신교회’(the Independent Reformed Church)이다. 세상으로부터 ‘독립’하여 ‘개혁/개신’ 신자로 살아갈 자로 키우는 것이 독립개신교회 성은 계절학교가 추구하는 개혁교육의 목표이다.
계절학교와 새싹 유치원 교육 프로그램
2009년 토요 휴무일 프로그램 I (출) (4/11, 6/13)
교시
시간
분
요리문답반
파란하늘반
소망반
새싹반
중1
중2
중3
09:00-09:10
10
조회
1교시
09:10-10:10
60
출애굽기 성경공부
10:10-10:30
20
이동
2교시
10:30-11:10
40
요리문답
수학
음악/독서
음악/독서
수학
독서/음악
11:10-11:20
10
휴식
3교시
11:20-12:00
40
요리문답
독서/음악
수학
수학시험
음악/독서
수학
12:00-12:40
40
식사
4교시
12:40-13:20
40
수학시험
수학시험
수학
독서/음악
음악/독서
13:20-13:35
15
이동
13:35-14:35
60
놀이 정리, 청소
2006년 봄, 가을학기 새싹 유치원
교육일수 : 씨앗반-100일(월, 수, 금), 초록반-63일(수, 금)
과목
담당
교육내용
성경, 시편찬송
담당교사
구약:창세기-여호수아, 신약:4복음서, 10회 공부뒤에 test
시편찬송-121,4,3,2,133,123,124,7,134,85,65,127,65,27,127
영어
담당교사
1) Read with me (재헌-7,8,9,10, 예은-8,9,10, 진주-11,12,13,14
2) Tape, CD와 병행한 영어책 다수 - 듣고 따라하기, 외우기
수학
담당교사
기탄 사고력 수학-재헌(1-20까지 덧셈, 뺄셈)
진주, 예은, 다희(1-20까지 덧셈)
글자쓰기
담당교사
매주 1일에 교본을 가지고 아이에 따라 글씨쓰기 연습
바이올린
담당교사
재헌, 진주, 다희, 예은 - 홈만 1권, 스즈끼 1권
책읽기
담당교사
1년에 200-250권(주3회)
한자
담당교사
한자쓰기, 한자 쓰고 따라 읽기
노래
담당교사
시편(8,10,121,133,123,121,23)
미술
담당교사
가베-8,9,10, 유아고학, 유아명화-매달1회, 생각그림, 색칠하기-매주1조, 조형-매주1회, 색종이-매주2회, 그리기-매 수업시간, 게임, 손유희, 유아체육-매1회
show & tell
담당교사
물건소개하기, 주제별로 발표하기, 장기자랑하기
참고문헌
기독교학교연구회 공저, 『우리가 꿈꾸는 기독교 학교』, 서울:예영, 1999.
박은조 편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학교』, 서울:예영, 1999.
오인탁, 주선애, 정웅섭, 은준관, 김재은, 『기독교 교육사』, 서울:한들출판사, 2007.
이승구, 『성령의 위로와 교회』, 서울:이레서원, 2001.
Henry R. Van Til, 『칼빈주의 문화관』, 이근삼 역, 서울:성암사, 1984.
J. Kamphuis, Characteristics of Reformed Christians and Confessions, 『개혁그리스도인과 신앙고백의 특징』, 서울:성약, 2005.
Kenneth O. Gangel & Warren S. Benson, Christian Education Its History and Pilosophy, 유재덕 역, 『기독교 교육사』,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92.
Louis Berkhof & Cornelius Van Til 공저, Foundations of Christian Education, 『개혁주의 교육학』, 서울:CLC, 1994.
N. H. Gootjes, Christ, Church, and Culture, 『그리스도와 교회와 문화』, 서울:성약, 2008.
Norman E. Harper, Making Disciples; The Challenge of Christian Education at the End of the 20th Century, 이승구 역, 『현대 기독교 교육』, 서울:엠마오
김헌수, “과업으로서의 개혁신앙과 신학”,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성희찬, “네덜란드의 기독교 학교 투쟁”, “언약과 신앙교육”, “흐룽 판 프린스터러와 기독교 문화 비판”
이광호, “주일학교 교육 연구”
허순길, “개혁교회의 신조교육”, “개혁교회 신자들과 교회교육”
성은 계절학교, “시냇가에 심은 나무”, 1호, 2호, 4호, 6호
박준태(실로암 교회 장로)
본 글은 이광호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실로암 교회에서 종교개혁기념주간에 행해진 세미나 중 박준태 전도사님께서 발제한 강의의 강의안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제목이 개혁교회 교육에 대한 연구이다. 이 주제를 더 잘 이해하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개혁교회의 교육을 알기 전에 우리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의 기원을 알고 개혁교회 교육을 살피는 것이 우리를 맑은 물에 비추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주일학교 교육은 선교사들에 의해 이식된 미국주일학교 교육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미국주일학교에서 시작하여 이것이 한국교회에 어떻게 이식되었는지, 그리고 이식되는 과정에서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미국주일학교와 다른 길을 걸은 개혁교회의 교육과 우리의 과제를 알아봄으로 한국적 상황에서 개혁교회 교육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도움을 얻고자 한다.
I. 미국주일학교
한국교회의 교육은 주일학교와 여름성경학고, 그리고 중고등부 수련회가 담당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주일학교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주일학교는 말 그대로 주일날 이루어지는 학교를 말한다. 이러한 주일학교의 시작은 미국주일학교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1세기 교회교육에서 지적된 주일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미국주일학교 교육이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한국교회에 이식되었다.
미국주일학교 교육은 그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 기원이 영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첫 주일학교는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으며 교회 밖의 기관으로 시작되었다. 1780년 영국 글로우세스터(Gloucester)에서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에 의해서 조직되었다. 레이크스가 ‘일요일 학교’를 시작한 18세기 말은 18세기 중엽부터 일어난 급격한 산업혁명의 결과로 많은 사회문제를 드러낸 시대였다. 사회문제는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났으며, 6세 정도의 아동들이 열악한 환경의 생산공장에서 노동해야만 했으며, 청소년의 비행과 범죄가 격증하여 어린이를 위해하는 환경상황이 ‘일요일 학교’를 시작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공부와 읽기, 쓰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주일학교 교육이 18세기 후반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과 연합되었다. 그리하여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교회와는 독립된 기관으로서 평신도에 의해 운영되며, 어린이들을 복음화시키는 주요 기관이라는 주일학교의 본질적 특성이 이미 형성하게 되었다.
50년이 지나지 않아, 즉 1780-1830년 사이에 주일학교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19세기 초에 미국에 들어오게 된다. 미국에서의 초기 주일학교는 영국의 모델을 따라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성격과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1860년에서 1900년 이후 주일학교는 교회 속에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때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이 밀려나면서 학교가 담당하고 있던 종교교육을 교회가 그 책임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때 교회는 교회의 성경과 신조에 의해 해석된 교회의 교육의 사명에 의하기보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주일학교의 본질과 사명에 근거하여 구성된 교육과정을 교회에 적용하게 된다. 복음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주일학교를, 어린이들을 복음화하거나 신앙의 초보를 가르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본질과 사명에 일치하는 충분한 교육적 사역을 다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시기에, 주일학교를 통해 교회 밖 기관이었던 이전의 상태의 잔존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수준의 교회 교육을 하게 된다.
미국 초기(식민지 시대) 교육은 그 대부분이 개혁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공교육의 씨앗은 개혁자들에 의해서 뿌려졌다. 성경의 권위,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와 칼빈의 5대 교리와 같은 위대한 교휸을 가르쳤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에게 성경과 요리문답을 가르쳤다. 그러나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이 밀려나며서 학교가 담당하고 있던 기독교 교육의 책임을 교회가 맡아야 한느 상황에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공교육의 세속화와 교회 교육의정체성과 질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공교육의 세속화로 공교육에서는 종교적 중립, 즉 반기독교적인 색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공교육 안에 기독교인이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세속적 입장이 변경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세속화로 주일학교 교육은 공교육이 담당하고 있던 교회의 역사와 신조 등을 수용하지 못하고 단지 전도하는 기관으로 교회 밖의 기관의 정체성을 그대로 갖고 주일학교 교육이 이루어졌다.
II. 한국주일학교
미국주일학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교회는 미국 초기 교육을 이식받은 것이 아니라, 약화되고 세속화된 교육을 이식받았다. 신조를 통한 신앙고백의 교육은 사라지고 전도하는 기관으로서의 주일학교 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 미국주일학교 교육을 이식받은 것이다.
그리고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미션 스쿨’은 학교를 전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교과목을 성경의 교훈이나 신앙고백과 통합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 달리 말하면, 언약의 자녀에 대한 교육은 차츰 뒷전으로 밀려났고, 가르치는 내용에서 기독교적 독특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선교 100주년을 자랑하는 한국교회는 이제 우리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자녀에 대한 교육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교회 교육의 역사를 통해서 그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다시 성경과 신조에 일치하는 교육과정을 따라 언약의 자녀들의 교육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III. 개혁교회의 자녀교육
개혁교회의 자녀교육은 획일적이고 단순하지 않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상호 관계 속에서 자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주신 선물임, 언약의 자녀이며,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교회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세상 속에서 개혁교회의 성도로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1. 교육의 근거
1)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
최근에 새롭게 대두되는 것 중에 하나가 자녀신학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교회 교육의 부재를 지적하면서 교회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염려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다. 신명기 6-11장은 모세의 설교로 시내산 언약을 갱신한 모압 언약 체결예식 가운데 5장에서 주요 법인 십계명과 12-26장의 세부법 사이에 위치하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6-11장까지의 긴 설교의 내용의 처음 시작 부분이다. 모세의 설교의 서두에 자여 교육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그 일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모세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
에베소서 6:4에서도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는 이 대표적인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따라서 언약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 우리 마음의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임을 기억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2) 세례시의 서약에 근거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행하고 있으며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리고 유아세례 시 부모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들을 양육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약을 기억하는 부모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약속의 이행을 위해서 부모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개혁교회 신자들은 유아세례 시 서약을 평생 기억하면서 유아세례애서 성찬상까지의 교육적 사명과 책임을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 :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을 따라서 그대들의 힘을 다하여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이 자녀를 교육하고 교육받게 하며, 또한 친히 사람의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힘쓰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니까?
답 : 예
3) 교회법에 근거해서
개혁교회는 아이들을 향한 기독교 교육과 관련해서 이것을 교회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 규칙은 개혁 해방파 교회에서 사용하는 교회법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치리회는 부모들이 세례 때에 서약한 바와 같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자녀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교육을 받게 하도록 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은 유아세례 시의 부모의 서약이 하나님과 교회 앞에 행한 것이므로 단지 구호가 아니라 실천적 순종의 서약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를 지도하고 감독할 의무가 있음을 교회법에 명시하고 있다.
2. 개혁교회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의 상호 역할
개혁교회 부모는 유아세례 시의 서약을 기억하며 자녀들을 위한 가정과 교회와 학교에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혁교회의 특징은 주중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일에는 예배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가 담당하고 있는 교육의 역할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중심이 주일의 예배에 맞춰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주일은 예배와 교제가 중심이며, 자녀들을 위한 성경과 교리 공부반이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1) 교회의 역할
개혁교회의 자녀교육은 유아세례에서부터 성찬상까지이다. 이는 언약의 자녀들이 유아세례를 받고 스스로 공적으로 신앙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고백할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가정과 학교와 협력하여 이 일을 해나간다.
초등학교 단계에 있는 자녀들은 기독교 학교에서 교회사와 성경을 배우기 때문에 한국식의 주일학교가 없으며,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게 된다. 중, 고등학생이 되면 교리반에 편성되어 12세부터 시작하여 18세 혹은 19세까지 적어도 7년 동안 매주 한 시간씩 목사님으로부터 직접 교리 교육을 받게 된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또래끼리 성경연구반을 만들어 성경 말씀을 연구한다. 이는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성경연구 모임이다. 여기에는 따로 지도 교사가 있지 않으나, 일 년에 몇 차례씩 교사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연령이 높아갈수록 벨직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경을 취급하며, 교회사, 교회정치, 예배학도 다루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자기가 속한 개혁교회는 무엇을 믿고 있음을 알게 되고, 역사 속에서의 자기 교회의 위상을 바로 알게 된다. 특별히 거의 모든 청소년들은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29문답을 거의 외우고 있게 된다.
2) 학교의 역할
a) 학교의 역사
네덜란드의 경우는 1798년 이전까지는 공교육이 기독교 교리를 담당하고 있었으나 1798년의 헌법으로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면서 공교육은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갔다. 그런 가운데 1848년의 헌법 개정과 1857년의 학교법 개정으로 사립학교 곧 기독교 학교가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 설립 및 유지비용은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해방파 교회는 1834년의 ‘분리’와 1886년의 ‘애통’의 노선을 따라서 ‘교회-가정-학교’의 삼각형을 손상하지 아니하고 활력있게 유지되도록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개혁교회 신자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많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1917년에 네델란드의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처럼 동등하게 정부로부터 재정보조를 받도록 교육법이 개정된다. 그러나 지금도 작은 사립학교의 재정은 부모들이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b) 학교에 대한 부모들의 자세
개혁교회는 부모가 자녀교육의 주체가 되어 있으며 그들은 자녀교육이 종교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에 의거한 것이다. “마땅히 행할 길”은 성경에 따르면 언약의 길이다.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그러므로 구약과 같은 맥락에서 신약의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종교적으로 교육하도록 권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는 말씀을 따라 개혁교회는 학교교육을 종교교육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개혁교회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세상에 맡기지 않고 기독교 학교를 세워서 교육한다.
또한 정부와 학교의 분리로 인하여 공립학교의 세속화로 인본주의적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부모가 기독교 학교를 세워 교육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부모가 자녀교육의 책임자로 해야 할 의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교회 부모는 유년기의 기독교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자녀의 교육을 불신자들에게 맡기는 것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c) 학교 교과 내용
개혁교회에서 세운 기독교 학교의 초등학교 시간표에는 일반적인 교과목도 있지만 교사가 매일 성경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주간의 찬송이라 하여 이 시간을 통해 매주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편이나 다른 노래의 한 절을 배운다. 학교 선생은 주간에 배운 시편을 목사에게 이야기하고 목사는 바로 그 시편을 예배 시간에 함께 부르도록 한다. 그리고 초등 3학년부터 ‘성경에 기록된 역사’라는 과목이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창조, 이스라엘 백성과 조상, 왕,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배운다. 또한 비단 이런 특정 과목에서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관계에서 신앙 교육과 각종 행사가 실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설교를 더 잘 이해하고 예배에도 더 잘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학교를 통해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우기 때무에 우리처럼 주일학교가 따로 필요없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에서는 더 심화된 교회 역사와 교회사를 배운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과 교회사를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개혁교회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개혁교회의 성도인 것에 대한 자부심 또한 크다. 그리고 한 번 개혁교회의 성도가 되면 개혁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3) 가정의 역할
개혁교회의 가정은 자녀 교육의 주체로 모든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개혁교회의 가정은 교회와 학교 교육의 연속선상에 있다. 주일 공예배 후 자녀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자녀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면서 자녀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설교가 의미하는 것을 설명한다. 또 그들은 설교가 자녀들의 생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이렇게 주일은 부모들에게 자녀의 기독교 교육을 위해 특히 바쁜 날이다. 또한 부모들은 스스로의 태도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가 설교 시간에 졸거나 오전 예배만 참석하고 오후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주의한다. 이는 부모의 본이 없이 말로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삶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함으로 개혁교회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설교의 대부분의 이해하지 못하지만 교회로 나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어렸을 때부터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함을 그들에게 행동으로 가르친다.
IV. 우리의 과제
개혁자 중에 루터와 칼빈이 비텐베르크와 제나바에서 각각 요리문답을 작성하여 신앙교육한 것을 알고 있다. 그 정신을 이어 받은 개혁교회 교육을 우리에게 적용함에 있어서 우리의 과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신앙 교육과 문화
교육을 한다는 것은 밭을 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철에 묵은 땅을 갈아엎어서 다시 거기에 씨를 뿌리는 것같이, 세속적인 가치와 욕망들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어서 거기에 성경과 신앙고백의 씨를 뿌리는 것과 흡사 비슷할 것이다. 판 더 베이크는 “기독인의 사명은 문화에 적응하거나 기독교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문화의 정체 곧 반 기독교적 문화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대에 풍미하는 소비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 같은 문화 사조가 반 기독교적 정체를 가진 것을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갈아엎어야 할 반기독교적인 소비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는 우리의 유교와 결합하여 자녀 교육에 깊숙이 침투하여 교회의 자녀를 사유화하려는 경향으로 나아가며,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풍조를 낳고 있다. 이는 우리의 자녀에 대해서 교회아(敎會我)로서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직분을 저버리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은 터를 닦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닦아야 할 터는 말씀과 신앙고백이며 버려야 할 터는 세속적 욕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들은 우리가 버려야 할 터를 열심히 닦으면서 교육을 통해서 사회의 상층에 진출할 수 있다는 세속적인 가치를 따라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2. 신앙 교육과 가정
한국교회는 자녀교육을 세상의 학교 혹은 학원에 맡기고 있다. 학교에서는 재능과 관련된 교육을 받기를 원하며 반면에 가정과 교회는 종교교육을 제공함으로 자녀의 마음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순진한 기독교 부모들의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학교는 우리의 생각대로 순진하지 않다. 학교에서의 재능교육은 언제나 세속적인 가치와 철학을 함께 동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교 교육을 단순히 재능교육으로 접근하는 것은 학교 교육의 위험성에 대해서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처사이다.
학교가 갖고 있는 교육철학은 이미 우리의 자녀들의 사상을 성경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인간의 삶의 불완전성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숙달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가르치며,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므로 적당한 환경과 현명한 지도 아래 있을 때, 자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발달해 나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되지 않았으므로 자신 속에는 최대의 윤리적 이상에 이를 수 있는 자연적인 추진력이 있음과 악을 극복하고 도덕적 완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 있음을 가르친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천사와 악마, 죄와 속죄, 천국과 지옥 같은 사상의 가르침을 금한다.
순진한 부모들의 생각과 현실은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의 교육 주체이기보다는 교육에 필요한 재정적 후원자 정도 역할로 밀려나 있고 자녀 교육의 주체는 세속적인 사상의 지배 아래 있는 학교가 차지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일에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에 있어서도 부모는 자녀의 교육의 책임자가 아니다. 이미 그 책임을 주일학교 교사에게 위임한 상태이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녀 교육의 책임 있는 교육자로서 누구를 지목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이는 부모가 책임있는 교육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 교육의 주체는 학교나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가 아닌 부모이다.
3. 신앙교육과 학교
한국의 기독교 학교는 대부분이 공교육에 성경과 기도를 더한 학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학교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알고 학생들은 교사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사로 인정하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다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같은 마음일 때 모든 수업이 달라진다. 이러한 기독교 학교를 지금 당장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과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루터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지적하였으며, 칼빈은 제네바 학당을 세워서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서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를 양성하는 일을 하였다. 한국 개혁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칠 목사와 더불어 우리의 자녀들을 교육할 학교의 시대적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어떻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칼빈이 1537년에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학교를 보게 된다. 그리고 1559년에 제네바 학당을 세운다. 무려 22년이라는 기간이 흐른 후에야 학교가 세워진다.
우리의 목표는 당장 학교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있다. 칼빈이 제네바 학당을 세우는데 무려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은 결국 교회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학교라는 건물이나 교사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교회를 통해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따라 작은 걸음이라도 한 걸음씩 걸을 때 우리의 걸음을 주께서 인도하실 것이며, 이 작은 걸음이 나중에 밑거름이 되어 교회의 역사와 함께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더 나은 과업이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V. 마치는 말
우리는 지금 큰 말을 하기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깨달은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미 강조하고 있는 일을 아직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예배 때 들은 마씀을 함께 나누는 일과 주일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한 확인과 과제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도와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말씀 안에서 바르게 자라기를 소망한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작은 것의 중요함을 인식할 때 이 작은 걸음을 주님께서 사용해 주시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기독교 학교의 모두를 갖출 수는 없지만 우리가 교회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과목의 정비와 함께 이루어질 수업시간의 시수를 늘려 나가는 일로부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교회의 몇몇 사람에 의해서 행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모의 협조와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교회 전체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교육의 주체는 부모이다. 우리 자녀들이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인격이 성숙하기 위해서 먼저 지각하지 않으며, 또한 결석하지 않도록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 내용을 가정에서 함께 나누기 위해서 부모 중에 한 사람은 꼭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주체가 부모인 것은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명심하고 여러 말로 명령하고 지시하기보다는 부모의 모범적인 실천이 그 책임의 한 부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언약의 자녀로 자랄 수 있도록 부모된 우리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곧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부여된 권리이기도 하다.
# 한국개혁교회의 사례
성은교회(대전)
독립개신교회에 속한 대전 성은교회는 1999.12.27 ~ 2000.1.31 겨울학교를 처음 시작하여 2000.3.11 ~ 7.15 봄학교, 2000.7.19 ~ 8.30 여름학교, 2000.9.9 ~ 12.16 가을학교로 일년 사절에 맞추어 지금까지 계절학교를 운영해 오고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 때는 일주일에 3일씩(월, 수, 금) 모임을 갖고 봄학교와 가을학교는 격주로 토요일을 이용하여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새싹 유치원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중심이 되어서 운영되고 있다.
자녀교육의 근거
성은교회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그대들이 힘을 다하여 이 자녀를 이러한 교훈으로 교육하고 교육을 받게 하며”라는 질문과 서약에 따라서, 개혁신앙으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부모가 유아세례 때에 서약한 내용 가운데 일부라 생각하여 계절학교로 모여서라도 자녀들에게 개혁신앙으로 교육을 받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회협회의 목적
유아세례 때에 서약한 정신에 따라서 규약에서도 교육협회의 목적이 “성은교회의 언약의 자녀들이 성경에 일치하는 교육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학교를 설립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이 목적을 위하여 교회의 영적인 감독을 받는다”(2조 1항)고 또한 밝히고 있다.
교육목표
교육의 목표는 교회의 언약의 자녀를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고 여기에 있는 그리스도의 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약과 신약의 교훈”으로 가르치는 것이며, 이러한 목표에 따라 우리는 ‘언약의 자녀’를 ‘교회의 자녀’로 키워서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인 그들이 자기의 입으로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예표하는 성찬에 참여하기를 소망하며, 그 목표를 위해 계절학교로 모임을 밝히고 있다.
성은 계절학교의 자세
성은 계절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첫째, 유교적인 토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교회의 행보를 생각하면서, 즉 이천년의 교회의 역사와 그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해명되었는가를 잘 알고 이 시대의 움직임을 신령하게 파악할 재목들을 주께서 일으켜 주시기를 바라고 나아간다. 둘째, 우리가 은사를 개인의 ‘자질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의 관점’에서 정당하게 이해하고 주님께 충성을 다할 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직분을 통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만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셋째, 성은 계절학교는 직업학교도 영재학교도 아니며, 언약의 자녀가 잘 양육을 받고 독립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가입하기를 목표로 한다. 성은 계절학교가 속한 교회는 그 이름이 ‘독립개신교회’(the Independent Reformed Church)이다. 세상으로부터 ‘독립’하여 ‘개혁/개신’ 신자로 살아갈 자로 키우는 것이 독립개신교회 성은 계절학교가 추구하는 개혁교육의 목표이다.
계절학교와 새싹 유치원 교육 프로그램
2009년 토요 휴무일 프로그램 I (출) (4/11, 6/13)
교시
시간
분
요리문답반
파란하늘반
소망반
새싹반
중1
중2
중3
09:00-09:10
10
조회
1교시
09:10-10:10
60
출애굽기 성경공부
10:10-10:30
20
이동
2교시
10:30-11:10
40
요리문답
수학
음악/독서
음악/독서
수학
독서/음악
11:10-11:20
10
휴식
3교시
11:20-12:00
40
요리문답
독서/음악
수학
수학시험
음악/독서
수학
12:00-12:40
40
식사
4교시
12:40-13:20
40
수학시험
수학시험
수학
독서/음악
음악/독서
13:20-13:35
15
이동
13:35-14:35
60
놀이 정리, 청소
2006년 봄, 가을학기 새싹 유치원
교육일수 : 씨앗반-100일(월, 수, 금), 초록반-63일(수, 금)
과목
담당
교육내용
성경, 시편찬송
담당교사
구약:창세기-여호수아, 신약:4복음서, 10회 공부뒤에 test
시편찬송-121,4,3,2,133,123,124,7,134,85,65,127,65,27,127
영어
담당교사
1) Read with me (재헌-7,8,9,10, 예은-8,9,10, 진주-11,12,13,14
2) Tape, CD와 병행한 영어책 다수 - 듣고 따라하기, 외우기
수학
담당교사
기탄 사고력 수학-재헌(1-20까지 덧셈, 뺄셈)
진주, 예은, 다희(1-20까지 덧셈)
글자쓰기
담당교사
매주 1일에 교본을 가지고 아이에 따라 글씨쓰기 연습
바이올린
담당교사
재헌, 진주, 다희, 예은 - 홈만 1권, 스즈끼 1권
책읽기
담당교사
1년에 200-250권(주3회)
한자
담당교사
한자쓰기, 한자 쓰고 따라 읽기
노래
담당교사
시편(8,10,121,133,123,121,23)
미술
담당교사
가베-8,9,10, 유아고학, 유아명화-매달1회, 생각그림, 색칠하기-매주1조, 조형-매주1회, 색종이-매주2회, 그리기-매 수업시간, 게임, 손유희, 유아체육-매1회
show & tell
담당교사
물건소개하기, 주제별로 발표하기, 장기자랑하기
참고문헌
기독교학교연구회 공저, 『우리가 꿈꾸는 기독교 학교』, 서울:예영, 1999.
박은조 편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학교』, 서울:예영, 1999.
오인탁, 주선애, 정웅섭, 은준관, 김재은, 『기독교 교육사』, 서울:한들출판사, 2007.
이승구, 『성령의 위로와 교회』, 서울:이레서원, 2001.
Henry R. Van Til, 『칼빈주의 문화관』, 이근삼 역, 서울:성암사, 1984.
J. Kamphuis, Characteristics of Reformed Christians and Confessions, 『개혁그리스도인과 신앙고백의 특징』, 서울:성약, 2005.
Kenneth O. Gangel & Warren S. Benson, Christian Education Its History and Pilosophy, 유재덕 역, 『기독교 교육사』,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92.
Louis Berkhof & Cornelius Van Til 공저, Foundations of Christian Education, 『개혁주의 교육학』, 서울:CLC, 1994.
N. H. Gootjes, Christ, Church, and Culture, 『그리스도와 교회와 문화』, 서울:성약, 2008.
Norman E. Harper, Making Disciples; The Challenge of Christian Education at the End of the 20th Century, 이승구 역, 『현대 기독교 교육』, 서울:엠마오
김헌수, “과업으로서의 개혁신앙과 신학”,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성희찬, “네덜란드의 기독교 학교 투쟁”, “언약과 신앙교육”, “흐룽 판 프린스터러와 기독교 문화 비판”
이광호, “주일학교 교육 연구”
허순길, “개혁교회의 신조교육”, “개혁교회 신자들과 교회교육”
성은 계절학교, “시냇가에 심은 나무”, 1호, 2호, 4호, 6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등업요청은 등업게시판을 활용해주세요. [4] | 최고관리자 | 2021.11.10 | 838 |
41 | 중고등부 형제 자매님! | 김동진 | 2007.10.07 | 2898 |
40 | 2학기를 맞이하며 | 최상범 | 2007.09.27 | 2864 |
39 | [re] 2학기를 맞이하며 | 김동진 | 2007.10.01 | 3084 |
38 | 사명(CCM) | 영남 | 2007.09.13 | 3058 |
37 | 한결교회 20주년 회고록을 시작하면서 | 김동진 | 2007.09.06 | 2505 |
36 | 소명 | 최상범 | 2006.12.05 | 2766 |
35 | [re] 소명 [1] | 김동진 | 2006.12.13 | 2262 |
34 | 살며 묵상하며 배우며 (1) 모세가 만약 혈기를 다스려 이집트 인을 죽이지 않았다면? [2] | 박정일 | 2006.10.25 | 2705 |
33 | 은혜를 나누는 것에 대한 제안 | 박정일 | 2006.10.25 | 3023 |
32 |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2] | 영남 | 2006.03.22 | 3883 |
31 | 1cm의 변화! [1] | 손재호 | 2005.08.25 | 2621 |
30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 손재호 | 2005.07.31 | 2405 |
29 | 찬양은 기도보다 더 값진 신앙행위 입니다. | 손재호 | 2005.07.28 | 2567 |
28 | 내 죄가 용서 받았다는 여부를 어떤식으로 알 수 있는가? | 손재호 | 2005.07.28 | 2034 |
27 |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켰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손재호 | 2005.07.28 | 2129 |
26 | 사랑하는 한결교회 지체들에게 [9] | 손재호 | 2004.04.30 | 2790 |
25 | 맛을 아는 신앙, 숙성되어 가는 신앙 | 박정일 | 2003.11.27 | 2470 |
24 |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3] | 손재호 | 2003.08.07 | 2567 |
23 | 주일이냐, 크리스마스냐 | 손재호 | 2011.12.25 | 1698 |
» | 개혁교회 교육에 관한 연구 | 손재호 | 2011.10.19 | 2568 |